삼성전자에 가전 부품을 공급하는 A업체는 2010년 초 삼성전자 구매 담당자로부터 "모델 생산 계획이 축소돼 부품 발주를 취소했으니 동의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미 부품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고, 다른 회사 제품과는 호환이 안 되는 것이었다. 삼성전자가 안 받아주면 그대로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A업체는 계약대로 납품을 받아달라는 요청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래 관계가 끊길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해줬다. 대신 삼성은 며칠 후 다른 부품을 발주해줬다. 하지만 금액이 원래 주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결국 수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해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삼성전자 부당 위탁취소'건의 실제 사례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례가 '수요독점'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 개선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수요독점' 이슈가 주목을 받고 있다. 수요독점은 무엇이고, 어떤 폐해가 있는 것일까.

◇애플 37.4% vs. 폭스콘 2.4%

수요독점(monopsony)은 시장에 공급자는 줄을 서 있는데 오직 하나의 소비자만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에서 소비자는 입맛에 맞게 상품을 골라 쓸 수 있고, 공급자들은 서로 자기 제품을 써달라고 아우성을 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무척 행복한 상황이다. 소비자는 많은데 공급자가 단 하나인 공급독점(monopoly)과 비교하면 정반대이다. 공급독점 상태에선 공급자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최대한 비싼 값에 물건을 팔게 되지만, 수요독점 상태에선 반대로 소비자가 최대한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 공급자들끼리 자기 제품을 이용해 달라고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송윤혜 기자

수요독점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도급 시장이다. 부품 시장에서 대기업은 소비자, 중소기업은 공급자 입장이 되는데, 소수의 대기업은 수많은 중소기업과 거래를 하면서 수요독점자의 지위를 한껏 누리게 된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다른 곳으로 공급선을 전환시킬 수도 있다. 덩치가 크면서 전문화된 부품을 많이 사용하는 글로벌 기업일수록 문제가 심화된다.

이 같은 체제에선 대기업들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적나라한 게 '아이폰'의 애플이다. 애플의 2011년 영업이익률은 37.4%였다. 100원어치를 팔아 37.4원을 남겼다는 것으로, 삼성전자의 3배에 육박하는 이익률이다. 반면 아이폰의 제조를 맡고 있는 중국 하도급 업체 '폭스콘'의 2011년 영업이익률은 2.4%에 그쳤다. 애플과 비교하면 1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애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제조를 맡아줄 다른 업체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폭스콘은 손해만 안 볼 정도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대기업 이익 독점, 한국 가장 심각

그런데 사실 우리는 애플을 비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경제 시스템 상으론 수요독점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몇몇 재벌 위주로 경제가 돌아가면서, 수많은 중소기업의 명운이 재벌에 달려 있는 형편이다.

주요 국가들의 기업 영업이익률(2005년 기준)을 보면 한국은 대기업이 7%, 중소기업이 3%로 미국(대기업 9%ㆍ중소기업 7%), 프랑스(대기업 8%ㆍ중소기업 8%)보다 격차가 크다. 독일은 대기업이 5%, 중소기업이 7%로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이 오히려 높다.

이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익성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수요독점이란 환경 탓이 크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그룹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11.9%에서 2012년 12.1%로 올라갔지만, 세종공업 등 주요 4개 협력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같은 기간 7.9%에서 3.5%로 내려갔다. 상황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다른 대기업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국제적인 성공신화는 중소기업의 눈물을 기반으로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기업 의존형(대기업 납품 비중이 전체 매출의 30% 이상인 기업)'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2008~2011년 평균)은 4.3%로 5% 수준인 다른 중소기업들보다 낮았고, 평균 부채비율은 145%로 130% 수준인 다른 중소기업보다 높았다. 게다가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조금 나아질만 하면 바로 단가 인하 압력이 들어온다"며 "어디 가서 돈 번다고 얘기하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특히 2차, 3차 등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정이 악화된다.

수요독점 경향은 경제위기를 계기로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납품 중소기업들이 부품을 공급하는 평균 기업 수는 2000년대 들어 계속 늘다가, 금융위기 이후엔 2009년 11.2개, 2011년 9.8개 등 감소세로 전환했다. 반면 납품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평균 납품액 비중은 2009년 76.7%에서 2011년 82.5%로 확대됐다. 덩치가 큰 몇몇 대기업에 대한 납품기업들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정부, 공신력 있는 통계조차 안 내

정책 대응은 미진하다. 관련법인 하도급법은 수요독점 기업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 가능성이 훨씬 큰 데도 일반 대기업과 구분해 규제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삼성,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별로 거래 중소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 같은 수치가 있어야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있는데,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은 해당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삼성, 현대차 같은 재벌기업들을 하도급 거래 우수기업으로 선정해 각종 실태조사를 면제해 주는 상황이다. 현금거래 확대 등 법이 정한 조건을 맞춘 결과이지만,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살피지 않고 겉만 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요 독점(monopsony)

일반적인 독점은 상품의 공급자가 소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반면 수요 독점은 수요자가 여러 공급자를 거느린 상황을 말한다. 이때 공급자들은 해당 소비자 외에는 상품을 공급할 곳이 없기 때문에 수요 독점자는 단가를 후려쳐 과도한 이익을 보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