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 핀 꽃들

김민철 지음|샘터|321쪽|1만3800원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는 '노란 동백꽃'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이런 대목.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다." 하지만 동백꽃은 보통 붉은 색이다. 작가는 몰랐던 걸까. 춘천 김유정 문학관에 전시된 책 표지에도 붉은 동백꽃이 그려져 있다. 단서는 강원도다. 작가가 나고 자란 그곳에선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을 동백기름 대신 머릿기름으로 썼다. 생강나무가 곧 동백나무였던 셈이다. '노란 동백꽃'은 무죄.

영화로도 화제가 된 박범신의 장편 '은교'에는 '쇠별꽃'이 나온다. '쇠'자는 동식물 앞에 붙어 '작은'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쇠별꽃이라는 이름은 작은 별을 닮은 데서 유래했다. 작은 별처럼 흰 꽃, 초록 잎파리 꼭 두 색만 머금은 이 앙증한 꽃은 열 일곱 싱그런 은교의 이미지를 더없이 잘 살려냈다.

조세희의 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팬지꽃 앞에서 줄 끊어진 기타를 치는 열일곱 아가씨가 나온다. '팬지'는 '명상'이라는 뜻의 불어 '팡세'에서 왔다. 꽃 모양이 명상에 잠긴 얼굴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유럽 원산의 제비꽃을 개량해 삼색제비꽃으로도 불린다.

이처럼 책 속에는 이런 문학 속 꽃 이야기가 알록달록 화단처럼 가득하다. 고전 혹은 화제가 된 소설 33편을 배경으로 100가지의 꽃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히 '꽃으로 읽는 문학'이다. 소개되는 작품이 예전에 읽어본 것들인데도 거기에 그 꽃이 있었던가, 연방 놀라움에 사로잡힌다.

이제는 '국민 소설'의 반열에 오른 황순원의 '소나기'에 노란 양산 모양의 '마타리꽃'이 나온다는 사실 기억하는 이 얼마나 될까. 언뜻 외래어 같은 마타리도 실은 순우리말이다. 줄기가 말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

김유정 소설 '봄봄'에 나오는 꽃며느리밥풀꽃에 얽힌 '며느리 설움'은 또다른 꽃 '며느리밑씻개' 사연으로 이어진다. 줄기에 사나운 가시가 수없이 돋아있는 이 꽃을 예전 시어머니들은 '미운 며느리'에게 볼일 본 후 쓰라고 던져주곤 했단다.

사진과 더불어 미니 도감식으로 풀어놓은 꽃에 관한 잡학다식은 값진 덤이다. 배롱나무는 7월부터 약 100일간 꽃 피운다 해서 백일홍나무라 부르다가 빨리 발음하면서 배롱나무로 굳어졌다. 구근(알뿌리) 식물인 백합은 나리의 한자어인데 구근의 비닐줄기가 백여 개 모여 있다 해서 백합이라 부른다.

똑 닮은 매화와 벚꽃을 구분하는 요령은 어디 가서 아는 체하기 좋다. 둘 다 하얀 꽃에 비슷한 시기 움이 트지만 매화는 아직 춥다 싶은 2~3월에, 벚꽃은 봄기운이 완연한 3~4월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매화는 가지에 달라붙어 있지만, 벚꽃은 가지에서 꽃자루가 나와 핀다는 점도 차이다. 열매도 매화나무는 줄기에 바로 붙어 매실이 열리고, 벚나무는 긴 꼭지 끝에 버찌가 달린다.

엇비슷한 갈대와 억새, 달뿌리풀의 차이를 묘사한 대목은 압권이다. "이삭이 여고생 머리처럼 한쪽으로 단정하게 모여 있으면 억새, 무성하고 산발한 것처럼 보이면 갈대, 대머리 직전처럼 엉성하면 달뿌리풀."

문학을 다룬 책이야 널렸다. 야생화를 소개한 해설서도 많다. 하지만 둘을 교직한 책은 일찌기 없었다. 거기에 호기심 많은 딸을 둔 아버지의 자상한 마음씨, 꼼꼼한 취재가 몸에 밴 기자의 관찰력이 더해져 독특한 교양서를 만들어냈다.

2006년 4월 남북 장관급 회담 취재차 평양에 간 저자는 이런 기사를 송고했다. "지금 평양은 봄꽃들이 만개했다. 순안공항 인근에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어 있고, 금수산기념궁전 주변에는 샐비어 등으로 꽃바구니 장식을 해놓았다." 저자는 또 이승우의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에 나오는 '소나무 줄기를 감싸 안은 때죽나무'의 실물을 확인하려고 남양주 홍유릉을 찾아가 해질녘까지 뒤진 적도 있다.

그런 집요함으로 작품 속에서 꽃에 관한 '옥의 티'까지 잡아낸다. 저 결벽한 김훈의 '칼의 노래'가 희생양이라니. 이순신이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의금부에서 풀려나 남해로 내려오는 동안 마을에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고 쑥부쟁이 덩굴 밑에 백성들이 숨었다는 표현에 시비를 건다. 백일홍이나 쑥부쟁이는 각각 여름과 초가을에 피는 꽃이기 때문에 틀렸다고 말한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옥수수도 실은 왜란 때 명나라 군사들이 식량으로 가져온 후에야 퍼진 것. 잘못이라 쓴다.

장편 '남한산성'을 쓰기 위해 남한산성에서 한 계절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고 하고, 아내가 죽어가는 과정을 다룬 중편 '화장'을 쓸 때는 '온종일 의학서적을 뒤적여 겨우 한두 문장을 건지기도 했다'는 치열한 작가가 화초에 대한 관찰과 검증은 소홀히 하다니. 글은 어느새 회초리가 된다. 조정래가 대하 장편 '태백산맥'에서 '연보랏빛 수선화'라 한 것도 마찬가지. 수선화는 흰색과 노란색으로 필 뿐이다.

'낙동강 파수꾼'으로 불렸던 작가 김정한(1908~1996)의 일화도 따끔하다. 노 작가는 생전 후배 문인들이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을 쓰면 "세상에 이름 모를 꽃이 어딨노! 모르면 알고 써야지! 모름지기 시인, 작가라면 꽃의 이름을 불러주고 제대로 대접해야지!"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저자는 꽃에 무심했던 모든 이들에게 들으라는 듯 옮겨 적어 놓는다.

대학에서 해양학을 전공한 저자는 신문사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문학 기자가 꿈이었다. 하지만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런 그가 야생화 공부로 샌 것은 2003년 봄. 예닐곱 살 먹은 큰딸이 아파트 공터 한 쪽을 가리키며 "이게 무슨 꽃이야" 반복해서 물어온 게 계기였다. (나중에 알게 된 그 꽃은 씀바귀.) 여기에 문청 시절부터 이어온 소설 읽기의 취미가 포개지면서 새로운 저술의 장르를 일궈냈다. 공은 마땅히 어여쁜 딸들에게 돌려져야 한다.

저자는 "세상에 동물과 식물이 있다면 절반 이상은 식물이다. 풀꽃 이름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세상이 환해졌다"고 쓴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이들 역시 앞으로 조우할 책 속의 꽃, 노변의 화초가 달리 보일 터. 이 만큼 독자에게 즉각 효력을 발하는 책도 드물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4월 중순 요염하게 피는 처녀치마꽃'을 보러 북한산 청수동암문으로 향할지 모르겠다. 아니면 5월 남산 야생화공원에 올라 고운 해당화를 즐길 마음이 일지도. 작가들은 이제 화초에 대한 묘사도 허투루 넘어갈 수 없게 됐다. 딱하다. 하지만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봄이 오는 길목 산모퉁이에서 만난 야생화 같은, 뜻밖의 선물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