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스무살을 갓 넘긴 한 프랑스 청년이 자신이 직접 만든 자동차를 몰고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등장했다. 청년은 '봐튀레트(Voiturette, 소형차라는 뜻)'가 비탈길인 레피크 거리를 오를 수 있는 가를 놓고 친구들과 내기를 했고, 왕복 12회를 오르내리는 데 성공한 그는 다음날 바로 12건의 첫 주문을 따내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청년의 이름은 루이 르노. 오늘날 연 매출액이 500억유로(71조3000억원)에 달하는 르노그룹의 설립자다. 당시 루이 르노가 만들었던 소형차 '르노 A타입'은 기존의 3륜 자동차에 바퀴 하나를 추가한 형태였다. 다이얼식 변속기와 루이 르노가 발명한 3단 기어박스, 후진 장치를 갖췄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50km에 불과했다.
르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 물자 생산 업체로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나치는 르노를 접수하고 다임러·벤츠 직원들을 르노에 파견했다. 르노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42년 연합국의 공습으로 독일 군수물품을 생산하던 르노 공장이 파괴되자 루이 르노는 충격을 못 이겨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다. 게다가 1944년 프랑스가 나치로부터 해방된 이후 루이 르노는 나치 협력자로 낙인찍혀 감옥에 수감됐고, 한달 뒤 끝내 사망했다.
루이 르노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유산인 르노 그룹은 11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르노를 상징하는 다이아 모양의 앰블럼을 단 자동차들이 세계 곳곳에서 바퀴를 굴리고 있다.
르노의 유산은 한국에도 남아있다. 삼성자동차에서 출발, 르노닛산얼라이언스의 자회사가 된 르노삼성의 부산 공장에 가면 다이아 모양 앰블럼을 달고 달리는 르노 차량을 많이 볼 수 있다.
르노삼성에서 생산되는 'SM3', 'SM5' 등의 차량은 르노 앰블럼을 달고 수출되기도 한다. SM3는 '플루언스', SM5는 '래티튜드'라는 이름으로 각각 유럽, 중국, 중동 등지에 수출되고 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QM5'는 '꼴레오스'라는 이름으로 해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르노삼성의 수출 역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2년 한해동안 르노삼성은 해외에서 총 9만4383대를 판매했다. 내수 판매량(5만9926대)의 1.6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 중 특히 SM3와 QM5는 각각 3만8374대, 4만9517대의 수출량을 기록했다.
이처럼 르노닛산얼라이언스 그룹의 중요한 생산 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르노삼성은 국내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올해 말까지 부품의 국산화율을 8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내의 우수한 협력업체가 부품 국산화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난 한해 르노삼성은 총 2000여개 개선 방안을 협력업체와 함께 도출했다. 르노삼성은 코트라와 함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협력사의 부품 수출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한국 부품 글로벌 공급 지원센터'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이번 2013 서울모터쇼에 총 6종의 차량을 출품한다. 특히 이달 초 제네바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소형 SUV '캡처(한국명 QM3)'는 르노삼성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다. 부드럽고 균형 잡힌 외관 디자인과 지붕과 차체에 각각 다른 색깔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도 르노삼성은 올 하반기부터 부산 공장에서 양산할 전기차 'SM3 Z.E'를 한국 팬들 앞에 처음 선보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