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2013년 3월 26일 오후 서울 그랜드 워커힐 호텔 열린 제4회 아시안리더쉽콘퍼런스 세션4 '재벌규제,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2대2 토론에서 (왼쪽부터)라파엘 아미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좌승희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삼성공화국'이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짐 클랜시 CNN 앵커)
"1%도 안되는 지분으로 그룹 지배하는 게 말이 되나."(장하성 고려대 교수)
"재벌은 과거 정부가 수출 중소기업을 지원해 키워낸 결과물이다."(좌승희 서울대 교수)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첫째 날 오후 하이라이트인 '조선 디베이트 2대 2 토론 배틀'은 불을 뿜었다. '재벌 규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무대 위에서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토론자로 나선 '점잖은' 교수들의 목청은 점점 커졌고, 강조점에서는 손가락질도 서슴지 않았다. 국내외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맞붙는다는 소식에 토론 시작 전부터 자리를 메운 참석자들은 들떠 있었다.

이른바 '장하성 펀드'라 불리는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로 유명한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이사이 야페 이스라엘 히브리대 경영대학원 학장과 팀을 이뤄 재벌규제를 지지하는 쪽에 섰다. 자유시장경제주의자인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가 라파엘 아미트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와 조를 이뤄 재벌 규제를 반대하는 논리를 폈다.

사회는 미국 CNN 방송의 명 앵커인 짐 클랜시. 그가 토론 주제를 먼저 소개했다. "재벌은 한국전쟁 이후로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상위 20개 재벌그룹이 전체 수출의 80%, 주식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나아가서 '감옥에 가기엔 너무 큰(too big to jail)' 존재가 됐다…."

◆ 한국은 삼성공화국, 재벌의 긍정적 효과는 어디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경제민주화'와 맞물리는 민감한 주제여선지 현장에는 긴장감마저 흘렀다. 토론에 들어가기 전 청중을 대상으로 사전 투표에서는 '규제 해야 한다'가 53%, '규제를 하지 않아야 한다'가 47%의 지지를 얻었다. 박빙이었다. 사회자 클랜시는 무대를 내려와 청중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나가며 토론 참가자들의 전의(戰意)를 불태웠다. 그가 질문을 던졌다. "'한국은 삼성공화국'이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첫 발언자로 나선 이사이 야페 교수가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재벌의 긍정적인 효과는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만 있는 이득일 뿐이다. 한국처럼 이미 OECD에 가입할 정도로 성장한 나라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대주주편법상속, 정경유착 등 부정적 측면을 완화할 규제를 고민해야 한다."

라파엘 아미트 교수가 반박에 나섰다. 그는 재벌의 다양한 긍정적인 측면을 내세웠다. "한국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었지만, 삼성, 현대, LG 같은 재벌 기업이 여전히 국가적 연구개발(R&D)과 인적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사실상 경제발전도 주도하고 있다. 규제해서는 안된다." 그는 "(재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이를 죽여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재벌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 전반의 제도적 정비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아시안/ 2013년 3월 26일 오후 서울 그랜드 워커힐 호텔 열린 제4회 아시안리더쉽콘퍼런스 세션4 '재벌규제,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2대2 토론에서 이샤이 야페 (히브리대 경영대학 학장),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더 강력히 규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하성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우리나라 재벌은 회사를 소유한 게 아니라, 지배만 하는 게 문제"라고 쏘아붙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그룹 지분은 1%도 갖지 않은 채 삼성생명-삼성전자 등 계열사별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그룹 전체를 통제한다는 것. 장 교수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삼성전자가 만드는 반도체 회로보다 더 어렵다"면서 "무차별적 사업 다각화와 소유하지 않은 통제 구조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 재벌 구조가 문제라고? 재벌의 태도가 문제

한국 재벌을 논하는 자리에서 '삼성'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임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토론자들끼리 "삼성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아느냐"는 질문을 주고받는 촌극도 벌어졌다. 야미트 교수가 "사외이사제도, 반독점법 등 기존의 제도만 잘 활용해도 삼성 등 재벌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자, 장 교수는 삼성전자를 제외한 계열사 이름을 하나라도 대 보라고 몰아붙였다. 장 교수는 "현재 삼성전자의 계열사만 81개에 달한다"면서 "연못 속에 고래가 있는 격인 상황인데 (기존 규제로 풀어나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 3월 26일 오후 서울 그랜드 워커힐 호텔 열린 제4회 아시안리더쉽콘퍼런스 세션4 '재벌규제,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2대2 토론에서 한 참석자가 토론을 지켜본 뒤 태블릿PC로 투표하고 있다.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가 맞받았다. 좌승희 교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균형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재벌을 규제하고 중소기업만 육성한 역차별적 정책은 오히려 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 "재벌 규제는 경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라면서 "재벌 집중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경험적으로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사이 야페 학장은 '대기업 골목 상권 진출' 문제를 거론했다. 야페 학장은 "삼성그룹이 호텔이나 빵집에 진출하는 것처럼 재벌이 너무 많은 산업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너무 심하면 자연스럽게 진출하지 않도록 하는 게 맞다"고 했다.

토론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싶더니 서서히 막바지로 향했다. 토론자들은 다시 기본 논점으로 돌아갔다. 야페 교수는 "산업과 금융을 분리하고, 또 금융기관이 기업지배구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승희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문제는 단순히 규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다"라면서 "재벌을 비판하는 학자에 장학금을 주고, 정부에 출연금으로 입막음하는 재벌 총수들의 자세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좌 교수는 또 "시장을 개방하고 산업간 경계를 풀어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장하성 교수는 "삼성 같은 새로운 재벌의 성공신화가 다시 나와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서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창업신화 나올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열띤 토론이 끝난 후 청중들을 상대로 한 최종 투표 결과는 '규제해야 한다' 50% 대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 50% 였다. 처음보다 더한 박빙세의 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