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국민은행은 주택은행과 합병하면서 국내 최대 은행으로 재출발했다. 그러나 10여년이 흐른 지금 KB금융지주는 선도 금융그룹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KB금융지주의 연결 총자산은 282조원으로 우리금융지주##보다 40조원 적었고, 연간 순이익은 1조3826억원으로 2조원이 넘은 신한금융지주의 68% 수준에 그쳤다.

KB금융의 위상이 과거보다 낮아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동안 최고경영자(CEO)인 지주회사 회장이 외풍에 휩쓸려 잇따라 갑작스럽게 물러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황영기 전 회장은 2008년 9월 취임 후 1년 만에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받아 퇴임했고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금융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9년 12월 회장으로 내정됐다가 한 달 만에 내정자직을 사퇴했다. KB금융은 반년 넘게 회장 자리를 비워두다가 2010년 7월 지금의 어윤대 회장 체제로 출범했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면 주요 경영진을 뽑는 과정부터 투명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은 지주회사의 CEO가 금융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승계계획을 미리 수립하고 투명하게 선임될 수 있도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관치 넘어 권치‥"지주회사는 낙하산 놀이터"

3월 중순 미국의 주총 안건 분석 전문 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보고서를 둘러싸고 KB금융 경영진과 사외이사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내부에서는 "우리 회사가 낙하산 놀이터냐"란 자조 섞인 말이 돌았다. 경영진과 사외이사 모두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임됐지만 승계 과정이 불투명하다 보니 내부에서조차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KB금융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금융지주나 KDB금융지주 등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금융회사는 새로운 CEO가 나올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A 씨가 최고 경영자로 있는 B 지주회사는 회사 내부에 대학별 모임, 동향 모임, 군대 모임 등 각종 모임이 활성화돼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첫 지점에서 근무했던 사람들 모임까지 합하면 5~6개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다"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업무로는 윗사람의 눈에 띄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권과 가까운 인물이 최고 경영자로 내려오고 그에 따라 내부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실력을 키우기보다 각종 연(緣)에 기대는 게 조직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로 있는 우리금융지주도 10여년 전부터 인사청탁을 없애겠다고 다짐해왔지만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고 경영자(CEO)를 뽑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이 다양한 경로로 개입하다 보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인사청탁을 거절할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 선임절차 투명하게 해 'CEO 리스크' 없애야

전문가들은 지주회사의 낙하산 관행을 끊고 CEO 교체에 따른 내부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승계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금융지주회사의 경영권 승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승계 계획이 확실하게 수립돼 있지 않다"며 "CEO를 선정하는 이사회는 구체적인 승계 계획을 가지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주회사 회장 선출에 대해선 일관된 기준이 없고 각 지주회사는 내부 규정에 따라 회장을 선임한다. 지배구조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은 금융감독원이 2011년 6월 만든 '금융지주회사의 성과보상체계 모범규준' 제9조 3항에 '은행지주회사는 장기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실효성 있고 체계적인 경영진 후계자 양성프로그램을 도입·운영해야 한다'는 규정이 전부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의 회장후보 추천위원회(회추위)가 후보를 정하면 심사를 거쳐 주주총회에서 결의하는데, 회추위 구성은 제각각이다. KB금융은 사외이사 전원이 회추위 구성원이고 신한금융은 회장과 사외이사 4명, 우리금융은 사외이사 3명·주주대표 또는 주주대표가 추천하는 자 1명·이사회가 선임하는 외부 전문가 3명 등 7명으로 회추위를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