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건물 모습(사진

“한 80년은 된 것 같은데요.”

지난 14일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은 정윤지(20,수원 거주)씨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몇 년 전에 지은 건물 같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서울시립미술관 건물은 1920년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의 파사드(Facade), 즉 전면부를 유지하면서 뒤쪽에 3층의 현대식 미술관을 짓는 실험적인 방법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 건물은 1928년 일제에 의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경성재판소로 지어졌다가 광복 후 한 층을 증축해 4층짜리 대한민국 대법원 건물로 사용됐다. 이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다시 설계와 공사를 거쳐 2002년 5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탄생했다.

이처럼 과거와 현대의 건축이 합쳐진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본래 서울시는 기존 건물 외관을 모두 보존한 상태에서 내부만 바꿀 계획이었다. 근대문화유산을 문화공간화 하는 세계적인 흐름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1999년 서울시립미술관 이전 공사 진행 과정 중에 구조적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의 설계를 맡았던 한종률 삼우건축사무소 부사장(57)은 “현상 공모 당시 서울시의 요구에 따라 벽을 모두 보존한다는 전제 하에 설계를 했다. 하지만 막상 공사에 들어가 마감을 뜯어내고 보니 콘크리트 구조체가 녹슬어 있었다. 정밀 진단을 한 결과, 구조 보강을 하더라도 수명이 30년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시는 공사를 중단시키고 다시 논의에 들어갔다. 구조적 결함이 발견된 만큼 아예 다 부수고 짓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건물이 갖는 역사성이나 상징성, 시민들이 보아왔던 기억들이 있으므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부사장은  “고건  당시 서울 시장과 강홍빈 부시장이 각계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린 결론이 바로 시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물의  파사드(전면)만 살리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옛 건물의 정취를 남기면서도 미술관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었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 시간의 압축이 표현된 매개공간(사진 위)과 카페테리아(사진

삼우 측은 이 공간에 ‘시간의 압축’을 표현하기로 했다. 한 부사장은 “파사드로 들어가면 나오는 6m 폭 되는 공간이 있는데, 이는 시간이 압축되는 공간, 일종의 전이 공간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는 “파사드와 평행하게 만들고 안으로 빛이 들어오도록 했는데, 이 공간을 넘어서면 21세기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며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으로 점점 시간을 따라 올라가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 곳은 카페테리아와 아트샵 등이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관람객 김형조(34)씨는 이 공간에 대해 “그런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햇빛이 잘 들어와 실외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줘서 평소 좋아했다"고 말했다.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면 유리 문이 있고, 그 뒤로 현대 건물들이 보인다. 이에 대해 한 부사장은 “전시를 보다가 뒤를 보면 1927년의 벽이 보이고, 밖을 보면 현대의 복잡성, 즉 21세기의 복잡한 서울 시내의 모습들이 보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3층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옥상 안으로 들어가면 전망대 같은 공간이 있다. 한 부사장은 “그곳에 서면 북악산과 인왕산, 경복궁과 청와대, 그리고 현대 건물까지 다 볼 수 있다”며 “서울의 독특한 분위기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지점"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미술관 옥상에 모여 서울의 경치를 본 뒤 시내를 투어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설계 당시에는 외국의 미술관처럼 옥상을 활용해 작은 전시나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할 계획이었으나 미술관 측은 안전을 이유로 출입을 막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06년 3월 근대(등록)문화재 237호로 등록됐으며, 근대건축물의 보존·활용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 받아 지난 2007년 대통령 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의 ‘이달의 건축환경문화’로 뽑히기도 했다.

당시 건설·건축 선진화위원회는 “옛 대법원 건물은 한국에 모더니즘 건축이 도입되기 전 마지막 고전주의 건축물이며, 이를 고쳐 지은 서울시립미술관은 옛 건물의 전면을 살려 70년 전과 현재의 건축 양식의 차이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건축물”이라고 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