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차 은행원인 우리은행 대구 상인동지점 정해영(51) 부지점장은 대구의 109㎡(약 33평)짜리 아파트에 산다. 1995년 분양받은 집이다. 대학교 2학년인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을 둔 전형적인 중산층 정씨는 평생을 월급쟁이로 일하면서도 큰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던 건 일찌감치 마련한 내 집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집을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봉급 생활자만을 대상으로 정부가 높은 금리를 보장해줬던 재형저축(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이었다.
정씨는 평생 네 번 재형저축을 들었다. 처음 2개는 총각 시절 술값으로 쓰려고 중도 해지했지만, 나머지 2개는 5년 만기를 다 채웠다. 1984년부터 5년 동안 연 32%씩 이자를 받고 25만원 월급 중 매월 7만원씩을 꼬박 부었더니 약 700만원이 모였다. 재형저축이 원금 420만원을 5년 만에 1.7배 불려준 것이다. 정씨는 이 돈을 부모님에게 드렸다. 평생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월급쟁이 아들을 두니 이런 일도 있네"라며 웃었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모아놓은 돈을 더해 대구에 1600만원짜리 생애 첫 집을 마련했다.
정씨가 1993년 결혼한 뒤 분가해 구입한 첫 집도 매월 12만원씩 집어넣어 5년 만에 약 1000만원으로 불린 재형저축이 밑천이었다. 당시 은행에선 재형저축을 만기까지 가져간 사람이 집을 살 때 싼 금리로 돈을 빌려줬다. "재형저축을 끝까지 가져간 사람은 신용이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정씨는 꽉 찬 통장을 들고 가서 약 2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분양받은 약 1억원짜리 아파트의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썼다.
정씨는 "20~30%씩 이자를 얹어주던 재형저축은 월급쟁이들의 자랑거리였다. 재형저축으로 돈 모으는 재미 덕분에 악착같이 저축을 했다"라고 말했다.
1976년 도입돼 1995년 사라졌던 재형저축이 지난 6일, 18년 만에 부활했다. 이번에 나온 재형저축은 절세상품 수준으로 큰 혜택이 없지만 과거 재형저축은 이자로 돈 불리는 재미에 가장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고,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도왔으며, 한국의 중산층을 두텁게 한 원동력이었다.
재형저축의 출범을 알렸던 1976년 1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의 제목은 '봉급자도 목돈 만들 수 있다'였다. 당시 재무부는 '근로자의 재산형성과 내 집 마련 노력을 지원한다'라는 점을 재형저축의 취지로 내세웠다. 정부는 이렇게 특혜를 많이 주면서 확보한 돈을 부족했던 투자 재원으로 활용했다. 그때 재무부 장관이었던 김용환 새누리당 고문은 "박정희 대통령은 중산층 육성이야말로 사회의 안전판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고 그런 차원에서 '종업원 지주'와 재형저축 같은 일련의 정책들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형저축은 한국의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데 확실히 일조를 했다"고 평가했다.
재형저축이 도입된 1976년부터 10년 동안 주가는 약 1.8배 올랐다. 당시 재형저축 금리의 이자는 연 28.1%(만기 5년 기준)였다. 1000만원을 주식에 묻어 두면 1800만원이 되지만 재형저축에 이 돈을 나누어 부으면 2200만원으로 불어났다. 재형저축 금리는 1980년 최고 연 41.6%까지 올라 한때는 재형저축에 5년만 돈을 넣으면 원금의 두 배가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주는 등 부가 혜택도 쏠쏠했다. 차곡차곡 재형저축에 돈을 넣는 것이 목돈을 마련하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었던 시절이었다.
30년간 수출입은행에서 일했던 안창수(68·동양화가)씨는 "월급쟁이들 사이엔 '사업가처럼 거액은 못 벌어도 우리에겐 재형저축이 있다'는 자부심과 공감대가 확실히 있었다. 지금의 국민연금 차감액처럼, 재형저축 차감액 칸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재형저축은 보편화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재형저축 도입 과정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으로 참여했던 고려대 경영학과 이만우 교수는 "1970~1990년대 재형저축은 한국 사회에 '중산층이 되려면 아끼고 모아야 한다'라는 정서를 형성한 중요한 동력이었다. 재형저축은 투기나 일확천금으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차곡차곡 불려 나간 건전한 중산층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재형저축의 절정기였던 1991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나는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재형저축의 시대는 1995년 막을 내렸다. 정부가 신규 가입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자 지급을 위한 막대한 재원 조달도 문제였지만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재형저축의 인기가 시들해진 탓도 있었다. 1986~1995년 주가는 8배, 아파트 가격은 84% 올랐다. 반면 금리는 계속 떨어져 저축의 수익률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따라가기가 어려워졌다.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공공정책연구실장은 "1990년대 이후 자산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은행 통장이 아닌 부동산, 주식 등에 돈을 묻어두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로 가계 대출이 늘어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안정적 중산층은 점점 얇아지게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