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0엔당 평균 원화 가치가 4년5개월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다소 하락했지만 무제한적인 양적완화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진 영향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달러당 엔화 환율이 당분간 등락을 반복하면서 원·엔 환율 하락세가 주춤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길게 보면 원·엔 환율의 하락세가 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원화는 달러 대비 강세 추세를 보이는 반면 엔화 가치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주목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한국무역협회ㆍ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환율 안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안다"며 "우리 기업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이 공개적으로 환율 문제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 하락할 경우 우리나라 총 수출은 0.9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은행들의 선물환 거래 여력 축소,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분에 대한 가중치 부과, NDF 거래의 중앙청산소(CCP) 이용 의무화,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강화 등을 대책으로 준비중이다. 또 채권거래세, 외환거래세 등 한국형 토빈세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 엔화 대비 원화 환율 올들어 9.4% 절상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평균 100엔 당 원화 환율은 전월보다 30.39원 하락한 1166.43원을 기록했고 현재도 비슷한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2008년 9월(1060.60원) 이후 4년5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1월까지 포함하면 올해 들어 원·엔 환율은 지난해 12월에 비해 121.62원(9.4%)이나 하락했다. 원화 가치 강세가 이어졌다는 얘기다.

월 평균 원·엔 환율은 지난해 5월부터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올해는 지난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원·엔 환율 하락은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상승한 반면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올해는 달러 대비 원화와 엔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더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달 급격한 엔저(円低)는 '아베노믹스'에 적극 호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가 신임 일본은행(BOJ) 총재로 조기 내정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국회에 출석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성역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자유민주당 총재의 '무제한 양적완화'에 적극 동참할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과장은 "올 들어 주춤했던 달러 대비 엔화 가치의 하락세가 BOJ 총재의 조기 교체로 다시 이어졌다"면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라카와 BOJ 총재의 임기가 끝나는 4월까지 엔화 가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했는데 조기에 사임하면서 그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 원·엔 환율 하락세 '주춤'‥장기적으로 추가 하락 불가피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엔 환율 하락세가 진정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은정 우리선물 연구원은 "엔·달러 환율 하락세가 주춤하고 있고 더 하락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서 "(국내 경제에)민감할 정도로 원·엔 환율이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원 과장 역시 "원·엔 환율이 2월 중순에 1152원까지 하락했던 것에 비하면 오르고 있다"면서 "당분간 원·엔 환율 하락세가 쉬어가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화 가치는 강세, 엔화 가치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원·엔 환율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우리선물은 현재 1080원대인 달러당 원화 환율이 오는 4분기 1050원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해외IB들은 엔·달러 환율이 현재 90엔대 초반에서 올해 연말 100엔까지 급등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엔·달러 환율이 꾸준히 올라 올해 말 102엔까지 갈 수 있다고 봤다. 바클레이즈는 100엔, 도이치뱅크는 95엔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엔·달러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본 IB는 13개사 중에 4곳에 그쳤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1050원, 엔·달러 환율은 연말까지 95~100엔 정도로 전망한다"며 "큰 흐름상 원화강세, 엔화약세로 갈 것이기 때문에 원·엔 환율은 더 하락하고 우리나라 수출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