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부터 사업 추진에만 6년 반. 자본금 1조원에서 시작해 다 털어먹고, 이제 남은 건 9억원뿐. 사업비 31조원대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불린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한번 제대로 올라보지 못하고 파행만 계속되더니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과 공기업이 참여한 31조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이 6년 반이란 세월동안 시멘트 한 포대 부어보지 못하고 파산 위기를 맞은 건 다름 아닌 사업 최고 책임자들의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 고액 연봉 챙긴 박해춘 용산역세권개발 회장
2010년 삼성물산이 코레일과 땅값 협의 과정에서 자산운용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 주관사 자리를 내놓은 이후 용산 사업의 민간출자사들은 롯데관광개발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당시 민간출자사들이 꺼낸 회심의 카드는 박해춘 전 국민연금 이사장의 영입. 박해춘 이사장은 2010년 10월 5일 AMC 회장으로 선임됐다.
박 회장의 등장은 화려했다. 서울보증보험 대표와 LG카드 사장, 우리은행장 등 3대 금융분야 최고경영자(CEO)를 차례로 지냈을 뿐 아니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위기의 금융기관들을 모두 정상화시켜 '구조조정 해결사'라는 별칭을 얻었던 터라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란 희망도 나왔다.
특히 그는 해외 투자자본이라는 신기루를 투자자들에게 제시했다. 2010년 9월 조선비즈와 단독 인터뷰에서 박 회장은 "금융기관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싱가포르, 홍콩 쪽에서 (자본을 끌어들일 만한 방법을)생각해 놓은 게 있다"고 말했다. 또 중동계 오일머니도 끌어 올 것이란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용산 사업은 자본금 1조원은 다 쓰고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은 9억원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박 사장이 약속했던 해외 투자 유치도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전환사채(CB) 발행 과정에서 외국계 사모펀드가 115억원을 투자한 것이 전부다. 또한 자금 모집도 모두 국내에서 이뤄져 사실상 해외 투자는 없다.
이런 가운데 박해춘 회장의 고액 연봉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박 회장은 1년차엔 6억원, 2년차 6억6000만원, 3년차 7억2000만원 등 1차 3년의 임기 동안 총 19억8000만원을 받기로 돼 있다. 향후 2차 3년 임기가 연장될 경우 총 44억4000만원의 연봉을 받게 된다.
이렇다 보니 한 일에 비해 급여만 축냈다는 비난 여론도 거세다.
용산역세권개발 민간 출자사 관계자는 "용산 사업이 파국으로 가도 손해보지 않는 한 사람은 박해춘 회장"이라고도 했다.
◆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의 정상화 계획, 되레 코레일 부담 늘려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은 이철 전임 사장이 코레일이 용산 사업에 단순히 토지주가 아닌 주주로 참여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후 부임해 용산 사업을 주도했다.
허 전 사장은 위기를 맞았던 용산개발사업이 코레일의 토지대금 납부이연 등 정상화 방안에 따라 재추진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업계는 "사업정상화 방안으로 제시됐던 내용이 지나치게 코레일의 자금 부담을 늘렸다"며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에 따른 4조원 가량의 자금 부담을 지는 결과가 됐다"고 평가했다.
정창영 코레일 사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전임 사장에 대해 이야기 하는게 조심스럽지만 용산 사업을 왜 이렇게 민간출자사들과 계약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코레일은 일방적으로 자금을 지원만 하고 지원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조항이 하나도 없는 계약 조건은 부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 서부이촌동 묶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욕심이 없었다면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은 이미 마무리됐을지도 모른다.
오세훈 전 시장은 2007년 서부이촌동을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부지인 철도 정비창과 묶어서 개발하는 것을 전제로 허가를 내줬다.
당시 오 전 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한강변에 고층 아파트를 짓고 이에 따라 기부채납하는 공간들을 시민에게 돌려 공공성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보상문제가 불거질 게 뻔한 서부이촌동이 용산 개발사업과 묶여 개발되면 오 전 시장 입장으로서는 골치 아픈 사업을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해결 지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서부이촌동이 용산 사업에 묶이면서 2200여가구에 대한 '주민보상'은 사업의 숨은 복병이 됐다.
서부이촌동 주민 역시 용산 개발에 묶이면서 5년 이상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용산 사업이 서부이촌동을 제외하고 진행되거나 부도로 인해 사업이 무산될 경우 5년간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주민들의 줄소송까지 예상된다"고 전했다.
◆ 코레일과 갈등 키운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삼성물산의 지분 45.1%가 롯데관광개발에 양도된 이후 사실상 사업을 주도하며 민간 출자사를 대표했지만, 최대주주인 코레일과 대립·반목을 키웠다는 비난 여론을 받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롯데관광개발이 진작에 사업 주도권을 코레일에 넘겨주고 사업 정상화 방안을 찾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업계는 정권이 바뀌고 정창영 코레일 사장이 이제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롯데관광개발은 소송전에 대비해 명분 쌓기로 사업 주도권을 넘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용산역세권개발 사업 관계자는 "지금 결과적으로 평가하면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책임이 있지만, 그동안 사업의 각 단계에선 책임자들이 나름 최선을 다해 결정을 했다"면서 "지금부터라도 지혜를 모아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