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초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중국 내 2300여개 오디오 매장을 보유한 애랑개선집단유한공사가 인천 영종지구에 45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 이 회사는 콘도와 오피스텔·상업시설 등을 개발해 중국인의 국내 부동산 투자이민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당시 외자 유치에 목말라 있던 송영길 인천시장은 직접 중국 베이징으로 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석 달이 다 되도록 이 사업은 답보 상태다. 최근엔 중국 측에서 "투자가 어려울 수 있다"며 사업 무산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유는 부동산 투자이민제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투자 대상 상품과 금액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중국 측 요청을 정부가 받아들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어렵게 유치한 외국인 투자가 물거품이 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외국인 직접 투자와 국내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겉돌고 있다. 시행 3년이 지나도록 투자 유치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제주도에만 352건(2307억원)이 투자된 게 고작이다. 나머지 3곳은 실적이 전무하다.
제주도에서는 나름대로 효과를 보고 있다. 투자이민제 시행 이후 중국 내 개인과 기업들이 제주도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년 말에 중국인의 제주도 땅 보유 건수는 1548건으로 사상 처음 미국(1298건)을 앞질렀을 정도다.
중국인들은 작년 4월 분양에 들어간 제주 한림읍의 아덴힐 골프리조트 80여가구를 사들였다.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라온프라이빗타운도 분양이 끝난 700여 가구 가운데 236가구가 중국인에게 팔렸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부동산 투자이민제를 통해 F-2 자격을 신청한 중국인이 160명쯤 된다"면서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투자 기준 금액이 미화 5만달러(또는 한화 5억원)로 비교적 부담이 적은 데다 중국인이 접근하기 좋은 관광지로 잘 알려진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나머지 지역은 투자이민제가 사실상 실패했다. 인천의 경우 중국 투자자들이 관심은 많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중국 재력가와 기업인으로 구성된 세계화인협회는 지난해 5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을 방문해 "투자기준 금액(15억원)을 제주도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심천문화투자유한공사 측도 "투자 대상이 콘도나 별장 같은 휴양시설로 제한돼 중국 부유층 대상으로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그나마 인천 영종지구에는 투자기준(15억원)을 넘는 콘도나 별장 자체를 찾기도 힘들다.
평창 알펜시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투자기준 금액만 조금 낮추고 주택 등으로 투자 문호를 확대하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것. 알펜시아 관계자는 "중국·홍콩은 물론 중동(中東)에서도 투자 문의가 들어온다"면서 "투자 문턱을 조금만 낮춰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도 투자이민제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토연구원 김근용 본부장은 "해외 자본의 국내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외국 부유층의 실거주가 이뤄지면 국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대상을 주거용 부동산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토연구원 측은 "외국인 자녀의 교육 등을 감안해 국내 주요 대도시까지 투자이민 지역을 확대하고, 주택도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투자이민제
외국인이 국내 부동산에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하면 국내 거주 자격(F-2)을 주고 5년이 지나면 영주권(F-5)을 허용하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와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지역, 전남 여수 대경도관광단지, 인천 영종지구 등 4곳에 적용되고 있다. 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중국과 동남아, 중동지역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