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에 특허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오는 2015년 3월부터 허가-특허 연계 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특허가 끝난 신약의 제네릭(복제약)을 만든 제약사가 허가를 신청하면, 오리지널 약을 만든 회사에 자동으로 통보되는 제도다. 원래의 특허를 가진 제약사가 특허 소송을 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복제약의 출시는 자동 연기된다.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끝나면 제네릭을 바로 출시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제품 출시가 1년 정도 늦춰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제네릭을 둘러싼 특허 소송도 전보다 훨씬 늘어날 전망"이라며 "제네릭으로 성장해온 한국 제약업계로선 위험 요소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 특허법무팀 황유식 이사는 "특허 전략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황 이사는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특허 분야에서 한국 제약업계가 맞닥뜨릴 제2의 물결"이라고 말했다. 1987년 7월 제약 분야에 도입된 물질 특허 제도가 제1의 물결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특허는 제조과정이 달라도 만들어진 물질이 같다면 특허 침해로 인정하는 제도. 당시 한국 제약업계는 "국내 제약산업이 다 망할 것"이라고 반발할 정도로 위협적인 제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국내 제약업계에 기회의 요소이기도 하다. 맨 처음 오리지널에 도전해 특허 침해가 아님을 인정받을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제네릭 시장에서 독점 판매권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제약사들은 한 회사가 먼저 제네릭을 내 문제가 없으면 다른 회사들이 우르르 복제약을 출시하는 관행을 유지해왔다. 이제는 그런 무임승차는 더 이상 어렵게 됐다. 반면 최초로 오리지널 특허에 도전해 승소하는 회사는 지금보다 더 큰 성장의 과실을 기대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전략으로 세계 20대 제약사로 성장한 회사가 이스라엘의 테바다. 테바는 허가-특허 연계 제도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활용, 아시아권 제약사로는 유일하게 글로벌 톱 10을 바라보고 있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 제약 시장인 미국에서 허가가 끝나는 신약의 특허에 도전하는 '특허도전' 전략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다수의 퍼스트 제네릭(오리지널 신약의 첫번째 복제약)을 양산, 독점 판매권을 누리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이런 성공의 뒤에는 치밀한 특허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력과 조직이 있었다. 보령제약 특허팀 김광범 부장은 "특허는 단순히 소송을 위한 수단이 아니며 특허는 바로 성장전략"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특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서, 특허 전담 인력이나 조직을 두는 제약사들이 늘고 있다. 한미약품은 특허 업무를 전담하는 3명의 변리사와 2명의 변호사를 포함해 8명 규모의 특허팀을 두고 있다. 선행기술 조사 인력 등을 합치면 팀 규모는 18명이나 된다.
보령제약도 5명으로 꾸려진 전담팀을 두고 있다. 종근당과 동아제약 등도 전담 인력이나 팀을 두는 등 특허를 강화하는 제약사들이 늘고 있다. 제약업계 특허 스터디 모임인 제약 분야 특허기술협의회(특약회)에는 전담 부서가 있는 제약사가 보통 20여개, 많을 때는 50여개가 참여해 분기마다 모임을 갖는다.
특허 도전은 이미 국내 제약사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미국에서 퍼스트 제네릭에 도전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인 넥시움을 개량한 신약인 에소메졸의 미국 진출 허가 신청을 한 것이다. 미국의 허가-특허 연계제도에 따라 미 FDA는 원 특허권자인 아스트라제네카에 통보했다. 아스트라 측은 한미약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만약 여기서 승소한다면, 한미약품은 180일간 미국 제네릭 시장에서 독점 판매권을 누릴 수 있다.
보령제약도 '특허도전' 대상을 찾고 있다. 수년 이내에 특허가 끝나는 글로벌 신약들을 대상으로 퍼스트 제네릭 가능성이 높은 품목들을 면밀하게 추적, 특허 도전 성공 가능성을 분석하고 있다. 퍼스트 제네릭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특허도전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제네릭 개발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보령제약 김광범 부장은 "이스라엘의 테바, 인도의 란박시 같은 회사들도 바로 이런 전략을 통해 성장을 했다"며 "확실한 특허도전 전략이 있다면 우리도 그런 성공을 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입력 2013.02.2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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