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의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대학생 장동건(장동건)은 친구들과 지인의 카페에 모여 얘기를 나눈다. 여기서 카페는 드라마 전개를 위한 세트일 뿐이었다.
지난해 인기를 끈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40대의 김도진(장동건)과 친구들도 주로 카페에서 모인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대학생 때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 카페는 단지 세트가 아니다. 바로 망고식스라는 디저트 카페의 PPL(드라마에 배경으로 등장한 광고)마케팅이었던 것. 이 드라마 PPL로 이 신생 프랜차이즈의 지명도는 크게 높아졌다.
◇국내선 영화 '결혼이야기'가 시초
PPL은 할리우드에선 이미 1980년대에 보편화됐다. 영화 'ET'에 나온 허쉬초콜릿,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쓴 레이벤 선글라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말에 나온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에서 지나친 PPL의 상업성을 꼬집는 장면이 나왔을 정도다.
국내에 PPL이란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은 1992년에 나온 영화 '결혼이야기'였다. 삼성전자는 신혼부부로 나온 최민수와 심혜진이 사용한 가전제품을 협찬했고, 제작비도 일부 지원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등장하는 등 소품 수준으로 이뤄지던 국내 PPL은 2004년 드라마 '불새'부터 한 단계 발전한다. 드라마 제작사와 광고대행사가 공동제작하면서, 극 중 등장인물이 다니는 회사로 MP3 제조사인 아이리버가 등장한 것이다.
이후 브랜드 이름을 연상시키거나 자동차 엠블렘을 가리는 수준에서 진행되던 PPL은 2010년 초 미디어 법 개정에 따라 간접광고가 도입되면서 본격화됐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2011년)에서 주인공인 차승원이 코카콜라 비타민워터의 모델로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무렵부터 단지 제품을 노출하는 수준을 넘어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는 BPL(brand placement)이란 개념도 확산됐다. 기아자동차는 드라마 '아이리스(2010년)' 주인공인 이병헌의 자동차로 K7을 공개해 성공을 거뒀다. 기아차는 최근 방영을 시작한 '아이리스 2'에도 전 차종을 제공,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를 노리고 있다.
◇드라마에서 예능으로 확대
최근 PPL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어 예능으로 확대되고 있다. 즐거움을 주는 예능의 특성상 소비자들이 쉽게 마음을 열기 쉬워 효과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멜론은 '나는 가수다' 경연곡의 음원을 제공하면서 매출 증대 효과를 얻었다. 개그맨 노홍철이 최근 '무한도전'에 들고 나온 LG전자 탭북도 검색어 순위에 오르면서 광고 효과가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1박2일'과 '런닝맨' 등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이동할 때 타는 차량도 대부분 PPL로 이뤄진다.
드라마 PPL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시각장애인인 주인공이 화장하는 모습이 방송된 후 해당 상품은 큰 인기를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이 폐쇄공포증 때문에 오픈카를 탄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PPL을 녹인 사례로 꼽힌다"며 "PPL을 대본에 잘 녹이는 작가들의 몸값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몰입도, 신뢰성 저해 등은 문제
PPL은 IPTV(인터넷TV) 확산 등으로 방송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앞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시청하는 일이 늘면서 TV광고보다는 프로그램 내로 광고가 들어갈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데 방해된다는 지적은 PPL이 넘어야 할 숙제다. 2012년 방영된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는 주인공이 도넛을 먹는 장면이 너무 많이 등장해 비판을 받았다. 주인공의 대화에 제품이 반복해 등장한 드라마 '최고의 사랑'도 과도한 PPL 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방송 내용에 광고주 입김이 작용해 프로그램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마케팅 비용이 상품 가격을 올려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부정적인 측면으로 꼽힌다.
☞PPL(Product placement)
영화·TV드라마·쇼 등에 기업 제품을 소품이나 배경으로 등장시켜 소비자들에게 해당 제품을 광고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