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어디로 갔지?"

박근혜 정부의 140개 국정과제가 발표된 21일.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위치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실은 술렁였다. 오후 2시 발표 시간을 5분쯤 남기고 배포된 국정과제 자료집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5대 국정목표, 21개 전략, 140개 국정과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재벌 개혁 등 경제민주화 공약 관련 국정과제가 있던 자리에는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질서 확립'이라는 전략 제목이 자리를 대신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내내 외치고 다녔던 '경제민주화'가 인수위 활동 두달을 거치는 동안 형체도 남지않고 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 당선인측의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 의지가 퇴색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실종, 공약 이행 의지 퇴색 논란

인수위측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관련 대선 공약을 대부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류성걸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모든 사항을 5대 국정목표에 나열할 수 없어 경제 파트 속에 들어갔다"며 "용어가 들어가지 않은 것과 경제민주화 의지나 실천 방향, 이행계획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강석훈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도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라는 표현이 경제민주화보다 더 광의의 개념"이라며 "향후 두 표현을 같이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수위측은 금산분리 관련 국정과제를 대선 공약 때 보다 강화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경제민주화 의지 퇴색 지적에 맞서고 있다. 인수위측은 대선 공약에서 크게 비중두지 않았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가 의무화되는 쪽으로 추진방향이 정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18대 국회에서 논의된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기준(자산 20조원 이상 금융·보험사를 보유하거나, 그룹 계열에 금융·보험사를 2개 이상 보유한 경우)을 적용할 경우 삼성·현대차그룹 등이 중간금융지주사를 설립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정과제에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금융·보험사의 비계열사 의결권 행사 기준을 대선 공약 당시의 '단독 금융회사 5%'에서 금융계열사 전체 5%로 수정한 것도 규제 강도를 높인 것으로 제시됐다. 강석훈 위원은 "개별 금융회사에게 5%의 의결권을 보장해준 것을 금융계열사 전체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5%로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금산분리 공약들이 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기술돼 있어서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인수위측의 주장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재벌개혁 공약이 기대보다는 진전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이나 실행 시기 등에 제시되지 않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뒤틀어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면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빠진 것은 이런 국정과제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의심케하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은 대선 공약보다 강도 약해져

전문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집단소송제·사인의 금지청구제 등이 당초 공약취지보다 후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선공약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사인의 금지청구제를 포괄적인 공정거래관련 법률에 모두 적용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국정과제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하도급법 상 부당단가인하, 부당한 발주취소, 부당한 반품 등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징벌적 배상금액 상한도 대선 당시 논의됐던 10배에서 3배로 줄었다. 집단소송제는 공정거래법상 담합 및 재판매유지행위에만 적용되고, 사인의 금지청구제 역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적용 대상이 모두 축소됐다.

인수위 측에서 이같은 민사적 처벌 수단이 포괄적으로 적용될 경우 소송이 남발할 수 있다는 기업계의 의견을 수용해 적용대상을 축소했다는 의심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교수는 "민사적 규율 수단의 경우 적용 대상이 포괄적으로 설정돼야 기업들로 하여금 불공정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규율효과가 있다"면서 "적용 대상을 타이트하게 정해 놓을 경우 불공정행위 근절·소비자 보호라는 원래 취지를 지킬 수 없다"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