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우리나라 수입차 대중화 시대를 연 것은 렉서스 대표 모델 ES다. 서울 강남에선 쏘나타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다 해서 '강남 쏘나타'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하지만 ES가 자기변신을 멈추고 구형을 굳어간 최근 2~3년 사이, 강남 거리를 차지한 주역은 독일차들로 변해버렸다. 렉서스는 미국 유학의 추억이 남아 있는 중·장년층들이나 아련히 떠올리는 차로 전락할 갈림길에 서 있었다.
도요타그룹은 위기를 직감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시장에서 이런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ES의 신형을 아주 작심하고 새로 내놨다. 일단 인상부터 공격적으로 뜯어고쳤다. 이제까지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이 ES의 특징이었다면, 전면부에 모래시계 모양으로 공격적인 그릴을 그려 넣고 헤드램프를 추켜올리면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상으로 바꿨다. 이런 모습은 GS와 LS 등 ES의 '형님' 모델들에도 적용됐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조용한 세단을 표방하던 철학도 전면 수정했다. '본 투 드라이브(Born to Driv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에 집중했다. 핸들 반응 감도를 종전보다 높이고, 전륜 서스펜션에 역방향으로 감긴 코일스프링을 적용했다. 이렇게 되면 직진 주행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차선 변경 때 차량의 롤링(rolling)을 빨리 억제할 수 있다. 또 고장력 경량 강판 적용 부위를 늘리고, 볼트·너트 대신 레이저 스폿 용접 방식을 확대 적용해 차체 강성을 보강했다.
신형 ES는 유독 커 보이는데, 차 전체 길이가 25㎜, 앞뒤 바퀴 간 거리(휠베이스)가 45㎜ 늘어났다. 일본 업체들의 장기인 넉넉한 실내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휠베이스를 늘리면서 동시에 뒷좌석 시트의 등받이 두께를 줄였다. 덕분에 무릎공간이 71㎜ 더 생겼고, 발 공간은 104㎜나 더해졌다. 뒷좌석에 타 본 사람들이 "와, 정말 차 크네"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뒷좌석 머리 위 공간도 20㎜ 확대해 트인 개방감을 줬다.
지난해 ES는 국내 시장에서 2410대를 팔았다. 6세대 렉서스 ES가 9월부터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만만찮은 실적이다. 이런 실적의 이면에는 하이브리드의 대중화 전략도 기여했다. 여러 개 독일 브랜드들이 우수한 성능의 디젤엔진 장착 모델을 내놓으며 디젤시장을 확대시킨 것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브리드를 찾는 고객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하이브리드 모델(ES 300h)의 가격을 가솔린모델(ES350)보다 100만원 싼 5560만원으로 책정해 하이브리드로의 '진입장벽'을 허물었다. ES 300h는 4기통 엔진에 전기모터가 힘을 더해 충분한 파워를 낸다. 새로 적용된 복합연비 기준 L당 16.4km를 달릴 수 있다. 예전 연비 기준대로라면 21.8㎞/L에 해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