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머라이언(사자 머리에 인어 몸을 한 상상 속 동물)이다. 하지만 최근 이 나라엔 세계인의 이목을 잡아끄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생겼다.

쌍용건설이 2010년 마리나베이 지역에 준공한 ‘마리나베이샌즈호텔(MBS)’. 서로 다른 각도로 최대 52도나 휘어진 2개 건축물이 1개동씩 쌍을 이뤄 3개동으로 세워진 독특한 외관에 축구장 2배 크기의 스카이파크를 얹은 호텔은 시공 전부터 세계 건축 시장의 관심, 아니 ‘과연 설계처럼 지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앞선던 프로젝트다.

쌍용건설이 준공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전경

MBS는 이제는 세계 건축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해외 건설작이 됐지만, 알고 보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설계로만 남았거나, 외국 업체의 실적이 될 뻔한 프로젝트였다.

사업 총괄을 담당했던 백휘 쌍용건설 해외건축담당 상무는 “수주부터 준공까지 MBS의 이면은 사실상 불가능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다.

백 상무가 전하는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우연찮은 발주 소식, 불가능했던 수주

2006년 봄 어느 날, 싱가포르 출장 중이던 백 상무의 눈에 싱가포르 정부가 마리나베이 개발 사업을 공모한다는 신문공고가 띄었다. "누가 가져갈까?" 그림의 떡 같게만 느껴졌던 사업은 공고 4개월 만에 미국 카지노 자본인 샌즈그룹이 가져갔고, 곧바로 시공사 선정으로 이어졌다.

워크아웃 졸업(2004년) 이후 해외사업 재개 움직임이 본격화했던 터라 출장 중인 백 상무(당시 부장)는 바로 회사에 발주 소식을 전했다.

회사 보고는 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백 상무는 “정말 어떻게든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보고를 하면서도 사업 조건이나 회사 처지 등을 생각하니 ‘남의 것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앞섰다”고 말했다.

백휘 쌍용건설 해외건축담당 상무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시공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불길한 예견은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발주처의 초청 건설사 리스트에 쌍용건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김석준 회장까지 나섰다. 발주처를 찾아 설득에 설득을 한 끝에 13개 경쟁사들과 함께 입찰자격사전심사(PQ)를 통과했다.

이제부턴 기술적 고민이 생겼다. 제시된 짧은 공사기간과 얼토당토않게 생겨먹은 설계가 복병이었다. 구조 엔지니어들은 “답이 안 나온다”며 고민했다.

백 상무는 “어떻게든 수주하려고 이리저리 연구를 하면서도, 항상 포기를 유념에 뒀고, 사실 언제 포기를 결정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기도 했다”며 당시 어려움을 토로했다.

◆ “쓰러지겠지….” 차가운 시선까지

수주가 확정될 때까지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결정한 공법은 제대로 들어 맞을지 장담하지 못한 채 사업은 미완의 상태로 시작됐다.

발주처 설계대로 실제 시공에 들어가니 어려움이 하나 둘 쏟아지기 시작했다. 백 상무는 “경사 각도가 큰 저층부를 올리는데, 철근을 세워두면 경사 때문에 자꾸 기울어져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하는 데도 크게 애를 먹었다”고 했다. 공기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착공 후 얼마 가지 않아 이미 공정이 두 달치나 밀렸다.

그는 “6층까지 올리고 나서야 공사 감을 잡기 시작했다”며 “휘어진 두 건물이 만나는 23~26층까지 올릴 때쯤에야 비로소 공기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건물이 윤곽을 잡아가자, 이젠 ‘무너질 것’이란 곱지 않은 시선이 괴롭혔다.

공사 당시 현지에선 “건물이 쓰러질지 모른다며 모 방송사 카메라가 현장 앞에 24시간 대기 돼 있다"는 말도 흘러나왔을 정도다.

가끔 휴대폰으로 붕괴 경고 알림이 울려 현장에 뛰어나기도 수차례. 백 상무는 “가설 지지대 등에 모바일 기기와 연동 되는 센서를 달아 휘어지는 수치가 한계점을 넘으면 공무 담당자들에게 자동으로 경고 알람을 해주는데, 이럴 때면 아주 간이 콩알만 해지는 느낌”이라며 “매번 오작동으로 밝혀지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고 전했다.

◆ 글로벌 경제위기를 기회로

공사 감도 잡았고, 건물도 착착 올라가던 2008년 하반기. 갑자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며 발주처의 자금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발주처의 선택은 둘 중 하나. 당시 마카오에서 시공하던 카지노 단지 개발 사업과 싱가포르 MBS 사업 가운데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모 아니면 도’인 상황에서 발주처는 MBS에 ‘올인’하기로 결정했고, 이때부터는 운도 따랐다. 당시 상황을 백 상무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MBS 사업을 전화위복으로 돌려놓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회사는 공사기간을 줄이는 만큼 인센티브를 준다는 발주처의 제안을 받았다. 공사는 탄력을 받아 3일에 1층씩 올라가는 무서운 속도로 진행됐다. 터무니없이 짧다던 공기도 예정보다 3개월 앞당겨 완공했고, 수 천만달러의 인센티브도 받았다.

◆ 호텔이 아닌 '현장'

누구라도 한 번쯤 머물고 싶어하는 호텔을 지었지만, 정작 백 상무는 MBS 숙박을 그리 내켜 하지 않는다. 트라우마 탓이라고 했다.

그는 “남들이 보기엔 자보고 싶은 호텔이겠지만, 제 눈에는 여전히 ‘현장’으로 보인다”며 “공사 과정의 모든 어려웠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쳐, 건물 곳곳에서 겪었던 힘든 기억들만 떠오른다”고 전했다.

“아마 공사장이라면 대부분이 ‘현장 트라우마’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세계 어디에 내놔도 랜드마크가 될 건물을 우리 손으로 짓고 세계가 인정해주니, 그거 하나면 된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