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내방동에 있는 기아자동차 제2공장은 현대·기아차 그룹의 최신식 공장이다. 해외 여느 첨단 자동차 공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작업자 손이 필요했던 문짝 경첩 부착 과정을 첨단 로봇으로 대체하는 등 힘든 공정을 자동화했다. 생산라인 길이도 500m 늘렸다.
기아차는 지난해 2800억원을 들여 광주2공장을 증설·현대화했다. 이 증설 공사로 광주2공장의 시간당 생산능력은 42대에서 66대로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현재 광주2공장 생산라인의 UPH(시간당 생산대수)는 42대에 그치고 있다. 증설 이전에 비해 겨우 2대 늘었다. 도대체 이 공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공장 증설하고도 생산량은 제자리
지난 22일 오후 광주2공장 조립라인에 들어서자 새 컨베이어 벨트의 페인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작업대가 놓여 있어야 할 라인 옆 자리 곳곳이 비어 있었다. 회사가 UPH를 66으로 올리려고 하자 노조가 "노동강도가 올라가서는 안 된다"며 작업 인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사람이 할 일의 양은 별로 늘지 않았는데 인원을 늘리면 증설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아직도 노조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2800억원을 투자하고도 증설을 위해 한 달 이상 공장을 놀렸지만 그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광주공장 전체 생산능력은 연간 50만대에서 62만대까지 증가한다.
기아차는 2011년 말 증설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시행에 들어가는 데까지 1년여를 허비했다. 증산의 필요성과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고, 전임 노조 집행부와 현 집행부가 조합비 횡령 여부를 놓고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바람에 협의 자체가 계속 미뤄졌다. 광주공장의 한 간부는 "가까스로 공사를 마치고 이제 작업 속도만 높이면 되는데, 이번엔 노조 대의원대회가 계속 지연돼 증산 일정이 또 미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작업량 기준도 없어
이런 일은 현대·기아차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생산라인을 신·증설하거나 새로운 차종 생산을 시작할 때는 단체협약에 따라 반드시 노조와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의 인원을 라인에 투입할 것인지, 고용 보장 등 복지 조건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항상 이견이 맞선다. 이런 협상은 보통 6개월~1년이 걸린다.
지루한 다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현대·기아차에는 적정 M/H(맨아워) 기준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근로자 한 명이 한 시간에 할 수 있는 표준 작업량을 뜻하는 말이다. 이 기준이 있어야 신차를 생산하거나 생산라인이 바뀔 때 총 작업량이 얼마이므로 라인에 몇 명을 투입하는 게 적정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조는 '적정 M/H' 산정을 수십 년째 거부하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독일·일본 등 주요 자동차 기업에는 가장 기본적인 수치"라며 "세계 유력 자동차 기업 중 이런 기준이 없는 곳은 현대·기아차뿐"이라고 지적했다.
기아차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현대차는 2011년 울산1공장 생산 차종이 클릭·베르나에서 신차인 벨로스터·엑센트로 바뀌면서 여유 인력이 생겼다. 하지만 노조는 오히려 인원 충원을 요구해 2만4500대를 생산하지 못했다. 울산5공장 에쿠스·제네시스의 증산 협의를 벌일 때도 70일간 생산 차질을 빚었다.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은 "차종 변경, 설비 증설할 때마다 시달리고 심지어 여유 인력도 전환배치 못하는 회사는 우리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엔 현대차가 신형 에쿠스를 만들기 위해 생산라인을 2공장에서 5공장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노조가 반발해, 신차 투입이 1년이나 늦어진 적도 있다.
현대·기아차 해외 공장에서는 회사가 신차 투입 또는 증산을 결정하면 바로 통보하고 생산에 착수할 수 있다. 국내와 해외 공장은 시간당 생산대수에 큰 차이가 난다. 광주1·2 공장은 42대, 미국 조지아 공장은 68대로 조지아공장이 매시간 광주공장보다 26대씩 많이 만들고 있었다. 전광석 기아차 이사는 "국내 공장의 생산 속도는 해외 평균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생산성을 계속 개선해 나가는 글로벌 경쟁업체들과 우리가 경쟁하고 있다는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M/H(Man/Hour·맨아워)
작업자 한 사람이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작업 분량. 보통 3년 이상 숙련된 근로자를 기준으로 '적정 맨아워'를 산정함.
☞UPH(Unit Per Hour·시간당 생산대수)·HPV(Hour Per Vehicle·대당 투입시간)
UPH는 생산라인에서 한 시간 동안 생산하는 차량 대수. HPV는 차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총 시간을 뜻함. UPH는 높을수록, HPV는 낮을수록 생산시설의 효율성과 작업 강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