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국산 신차(마이너 체인지)를 내는 회사는 놀랍게도 완성차 5개 브랜드 중 사정이 가장 어렵다는 쌍용자동차다. 11인승 미니밴 로디우스의 부분변경 모델에 해당하는 '코란도 투리스모(Turismo)'가 바로 그 차다. 다음달 5일 출시된다. 2010년 인도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한 뒤 처음 투자가 집행된 모델이기도 하다. 출시 직전 막바지 준비 작업이 한창인 평택 쌍용차 본사를 찾아 코란도 투리스모를 미리 만나봤다. 완성차 업체가 출시 이전 차량을 언론에 먼저 공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내달 5일 출시되는 코란도 투리스모의 성공을 위해 4500명 쌍용차 직원과 10만 협력업체 가족이 힘을 모았다. 사진은 지난 18일 디자인센터 신사옥 3층 품평장에 모인 코란도 투리스모 개발자들.

◇"자동차에만 집중한다"

지난 18일 쌍용차 평택 본사. 2009년 공장 점거 파업 이후 4년이 흘렀지만 정문 앞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정문에서 200m 떨어진 곳에는 해고자 등이 30m 높이 철탑 위에서 쌍용차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었다. 정문 앞엔 전경 수십 명이 서 있고, 정문 앞 상가는 폐가처럼 방치된 채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일부 단체가 내건 플래카드만 나부끼고 있었다. 정무영 쌍용차 상무는 "외부 문제로 시끄럽지만, 우리는 좋은 차를 계속 개발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본업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이번 코란도 투리스모 외에도 내년 말 출시를 목표로 2900억원을 투입해 1.6L급 소형 SUV(프로젝트명 X100)를 개발하고 있다.

정문을 지나 오른쪽 언덕을 오르면 작년 말 새로 지은 디자인센터가 나온다. 디자인센터는 과거 쌍용그룹 시절 서울 도곡동에 있다가 대우차에 인수된 뒤 대우차 디자인센터가 있던 당산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0년엔 다시 평택 본사에서 10km 떨어진 곳으로 옮겼었다. 지난해에야 본사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명학 디자인센터장은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규모는 가장 작지만, 지상 4층, 건평 1만㎡(약 3000평) 규모로 기획·모델·선행작업 등 디자인 전 업무를 한곳에 모았다"면서 "연구소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디자인과 차량개발 간의 실시간 협업도 쉬워졌다"고 말했다.

이명학 센터장의 안내를 받아 3층 품평장으로 올라갔다. 중앙 전시대에는 이제 막 조립이 끝난 코란도 투리스모가 자리잡고 있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의 일체감을 살린 전면부 다자인은 기존 차량보다 훨씬 깔끔해 보인다. 더 놀라운 것은 뒷모습이다. 전체적인 조화를 깬다는 평가를 받았던 뒷부분에 경사를 적당히 주고 중앙으로 디자인 요소를 모아주는 방법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란체스터 전략

1970~1980년대 일본 기업 전사(戰士)들이 즐겨 읽었다는 책 '란체스터(Lanchester) 전략'의 내용은 지금의 쌍용차 전략과 꼭 닮아 있다. '전력이 우세할 때는 총력전으로 단기간에 승부하고, 약세일 때는 개별전으로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는 게 전략의 핵심이다. 영국의 항공엔지니어 란체스터가 1차대전 때 항공기 전투를 분석해 만들어냈다.

코란도 투리스모 역시 란체스터 전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11인승, 쌍용차의 이미지인 SUV의 강인함, 체어맨 차체를 바탕으로 한 안락함 등을 합쳐 경쟁사에는 없는 차급을 만들어냈다. 즉 경쟁사에 비해 전력이 약한 쌍용차로서는 경쟁사와 정면 승부를 피하는 대신, 경쟁사가 주지 못하는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해 판매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레크리에이션 베이스캠프(Recreation Basecamp)'라는 브랜드 슬로건도 이 차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명형재 상품기획팀장은 "고객 조사 결과를 토대로, 40대 가장과 두 자녀 이상으로 구성된 가족을 위한 차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기본형 외에도 실내고와 고급감을 높인 하이루프 모델, 발판·프로텍터 등 오프로더 느낌의 장식을 덧댄 모델도 내놓을 계획이다. 과거에는 경쟁사 다인승 차량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 차값이 비쌌지만, 현재는 그 폭이 많이 줄어 판매 확대를 노려볼 만하다는 게 내부 분석이다. 인도에서 온 상품기획담당 프라할라다 라오 상무는 "쌍용차가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발전해 나가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4500명이 힘을 합치다
쌍용차 전 직원 4500여명. 협력업체 식구까지 합치면 10만여명은 쌍용차가 먹여 살린다. 작년 내수판매는 4만8000대로, 2011년보다 1만대나 더 팔았지만 전성기에 연간 10만대를 팔던 시절에 비하면 아직 많이 어렵다. 특히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소·디자인 인력은 다 합해봐야 600여 명. 현대·기아차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죽을 각오로 신차를 개발하고 판매에 집중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당장 코란도 투리스모 판매를 늘려야만 고용도 유지하고 회사도 살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날 둘러본 회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과거 쌍용차는 '만나면 서로 정겹지만 조직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느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생산 현장도 자신감과 투지로 뭉쳐 있었다. 윤경호 조립생산기술팀 차장은 "체어맨·로디우스를 만드는 조립 2라인은 그동안 판매량 부족으로 하루 1교대 8시간 중 절반밖에 일을 못했다"면서 "코란도 투리스모 투입으로 15일부터 잔업이 시작되면서 직원들 얼굴에 모처럼 웃음이 돌아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