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원화 환율 1060선 붕괴‥쏠림현상 가속도 붙어
-엔 원 환율 30개월 최저‥수출경쟁력 약화 우려
-"당국 통제력 잃었다" 지적도‥새정부 출범으로 대책 지연
-당국-인수위, 토빈세 논의 '주목'‥15일 재정부 업무보고

달러당 원화 값이 1060원 아래로 떨어지며 17개월 만에 최저치로 밀렸다. 1070원이 무너진 지 7일 만이다. 환율이 대기업의 손익분기점(1059원) 이하로 하락하면서 증시에서 수출주(株)는 급락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달러에 정부의 외환 시장 대책은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엔저(低)’로 경기에 대응,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더욱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 자동차 가전 등 일본업체와 경쟁하는 수출업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당 원화 환율이 1100원을 밑돌고 나서부터는 정부가 통제력을 잃었다고 본다. 환율 방어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외환 당국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때가 무르익었지만 새 정권 출범으로 지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오는 13일 예정된 기획재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는 외환 시장 상황과 관련 대책이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 거래세(토빈세)와 같은 이전에 없던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지 주목된다.

◆ 환율 하락 ‘가속도’ 붙어…엔·원환율 1200원선 위협 ‘30개월 최저’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060원을 밑돈 채 출발했다(원화 가치 상승). 1060원선을 하향돌파한 것은 17개월 만에 처음이다.

환율 하락 속도는 1100원선이 무너진 이후인 지난해 11월부터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11월6일 1090.7원이었던 환율은 한달 뒤인 12월7일 1081.7원으로 내려왔고,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엔 1070.6원(종가 기준)으로 떨어졌다. 이날엔 1060원선도 무너졌다. 10원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 20일, 10일로 짧아지는 등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양적완화 속에 상대적으로 경제 펀더멘털이 양호한 우리나라에 외국 투자 자본의 유입이 계속 늘면서 원화 가치가 선진국 통화는 물론 신흥국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 하락세는 더욱 가파르다. 이 환율은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1400원대가 무너진 데 이어 12월 초순 이후엔 1300원대를 밑돌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한달 후인 이날 1200원을 내줬다. 2010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 정부 외환시장 대책 약효 ‘NO’

외환당국은 환율 1080원이 위협받던 지난해 11월27일, 외환시장 안정 조치로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기존 대비 25% 줄인다고 밝혔다. 국내은행은 40%에서 30%로, 외은 지점은 200%에서 150%로 축소하기로 했다. 선물환포지션 비율을 줄여 해외 자금유출입 변동성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12월초엔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유출입을 주식ㆍ채권ㆍ파생상품 등으로 세분화해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아울러 넘치는 달러를 흡수하기 위해 은행이 외화예금을 늘릴 수록 외환건전성부담금(은행세)을 줄여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환율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변동성이 다소 완화됐을지언정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 축소가 지난 1일부터 적용됐음에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최근 13거래일 동안 2거래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림세를 보였다. 특히 이날은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로 낙폭이 4원을 넘어섰다. 이진우 NH선물 리서치센터장은 "은행권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 축소 방식의 대응책을 내놓는 것은 맥을 잘못 짚은 것"이라며 "현 환율 하락세는 수출업체나 투신권의 과도한 선물환 매도가 있었던 2006 ~2008년과 달리, 달러 공급 자체가 늘어난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추후 대책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선물환포지션 한도 적용방식을 '직전 1개월 평균'에서 '매 영업일 잔액 기준'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또 역외세력(외국은행이나 외국 투자자)의 달러 매도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환은행들의 차액결제선물환(NDF) 포지션을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중 은행의 한 딜러는 "이러한 외화 자금 시장 규제로는 지금 물밀듯이 들어오는 달러를 통제하기 어렵다"며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국제적인 분위기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외환 당국이 원화 강세 방어 의지를 강력히 보여주지 않고 환율이 떨어지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을 반복, 오히려 시장이 돈만 버는 개입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외환 시장 관계자는 "환율 흐름을 돌려세우겠다는 의지가 약하다 보니 해외 투기 세력이 공격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위기 맞는데 …'고환율 트라우마'에 굼띤 움직임?

정부도 충분히 위기감을 숙지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환율 쏠림현상이 걱정된다"며 "적극적이고 단계적인 대응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 재정부는 지난 8일 올해 첫 그린북(최근 경제동향)에서 외환시장 대응 수위에 대한 문구를 금융위기 수준으로 상향조정, 대응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응이 없다. 지난해 11월 선물환 포지션 한도 축소가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이후 1주일 만에 나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새 정부 출범과 같은 정치적인 변화가 외환 시장 대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집엔 외환시장 대책은 명시돼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 수출업체만 혜택을 보는 등 양극화가 심화된 '고환율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부담이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재정부 최초로 국제금융국장이 파견된 것을 보면 외환 시장에 대한 논의는 깊이 있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재정부는 오는 13일 예정된 인수위 업무 보고에 최근 환율 변동성 현황과 관련 대책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 자금 시장을 규제하는 기존의 '거시 건전성 3종 세트(선물환 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외에 토빈세에 대한 논의가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박근혜 당선인 측은 토빈세를 검토했다가 대선 공약에서는 뺐었다.

한편 환율이 단시간에 많이 떨어진 만큼 이제 자본의 급격한 유출 가능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한 외환시장 딜러는 "지금 외환 시장 대책은 환율 하락을 막는데에만 무게중심이 실려있다 "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