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1년여 전 김모(28)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에 한동안 진땀을 흘렸다. 'LG전자 스마트폰이 저절로 폭발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전단을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 근처에서 배포하기도 했다.

LG전자는 사고 배터리를 수거해 폭발 원인 분석에 나섰다. 정상적인 상황에선 폭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김씨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남부지법은 7일 "허위 사실을 유포해 제품 이미지에 중대한 손상을 입혔다"며 김씨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블랙 컨슈머에 골치 앓는 기업들

제품 구입 후 '피해를 당했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 문제가 도를 넘고 있다. 전자·유통·식품업계에선 "블랙 컨슈머에게 시달리지 않는 날이 없다"고 호소한다.

작년 10월 A식품업체는 '제품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고객 전화를 받았다. 식품업체는 "제품을 바꿔주고 다른 선물도 주겠다"고 했으나 이 고객은 "보상액으로 10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언론사에 제보하겠다"고 우겼다. 식품업체는 머리카락 유전자 검사를 제안했다. 머리카락은 고객의 어머니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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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컨슈머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주저한다. 인터넷에 악성 루머가 퍼져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블랙 컨슈머들은 이를 노린다. B식품업체는 "'딱딱한 걸 씹어 이를 다쳤으니 주식 1만 주를 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C패스트푸드업체는 "5년 전만 해도 배상액으로 수십만원을 달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최근엔 청소년이 매장을 찾아와 1억원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도 막무가내식 민원 골치

지난해 9월 시중 D은행 경기 북부의 한 지점에는 황당한 민원이 제기됐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현금자동지급기(ATM) 소독 상태가 불량해 모기에게 물렸으니 ATM 관리업체가 사과문을 쓰고 사례품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은행 측이 확인했더니 이미 몇 차례 민원을 제기해 사은품을 받은 고객이었다. 은행은 민원을 단순 불만 사항으로 처리하고 종결했다.

서울의 한 은행 지점에선 '끝자리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도 있었다. 예금을 찾을 때 "3만9원을 인출해 달라"고 요청한 뒤 은행 직원이 3만10원을 주면 정확하게 지급하지 않았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 고객은 "담당자는 반성문을 쓰고, 지점장은 사과하고, 좋은 지적을 한 내겐 사은품을 달라"고 요구했다.

은행·증권 등 금융회사는 이처럼 도를 넘는 민원 제기로 골탕을 먹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지어 한 은행에선 "볼일이 급한데 지점에 화장실이 없어 옆 건물로 가다가 속옷을 버렸으니 보상해 달라"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강경 대응 나서는 기업들

일부 기업은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E전자업체 관계자는 "최근 극소수이긴 하지만 범죄 수법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있어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서울 F백화점 골프 매장의 20대 여자 점원은 블랙 컨슈머 때문에 사표를 냈다. "선물 받은 골프화를 다른 사이즈로 바꿔달라"는 남성 고객에게, "저희가 수입하지 않는 상품이라 교환이나 환불을 해드리기 어렵다"고 거절한 게 화근(禍根)이었다. 이 남자는 이후 매일 매장에 전화를 걸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기업들이 강경 대응에 나서는 데는 내부 직원과 협력업체 사원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다. 신세계는 악성 항의 사례를 5종류로 나눠 대응 지침을 교육하고 있다. 직원이 대응 지침대로 행동한 경우 책임을 묻지 않는다. GS홈쇼핑은 보상을 노리고 상품을 반품·교환하는 고객에게는 "죄송하지만 주문을 하실 수 없다"며 주문을 받지 않는다. 정길호 기업소비자협회 회장은 "블랙 컨슈머는 제품 원가를 높여 다른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준다"며 "기업들도 일관성 있게 대처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랙컨슈머

악성을 뜻하는 블랙(Black)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한 용어. 기업에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거나 피해를 본 것처럼꾸며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