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내년도 중점사업으로 금융기관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개선, 창업 관련 패자부활제 활성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서민금융 지원제도 개선 등을 추진할 전망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금융위원회가 내년에 추진할 필요가 있는 정책을 약 50개로 간추려 최근 금융위에 보고했다. 이 중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개선 등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정책들과 비슷한 개념이어서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 "내년 경기 불투명…창업 패자부활제도 활성화해야"

23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연구원은 금융위가 내년에 수행할 필요가 있는 정책들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개선 ▲창업관련 패자부활제도 활성화 ▲청년창업 증대를 위한 지식재산금융 활성화 ▲중소기업 유동성 위축 방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및 지배구조 개선 등을 꼽았다.

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은 “저축은행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금융회사 대주주의 적격성을 주기적으로 심사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금융회사는 모든 국민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적격성 심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당선인도 대주주의 불법 행위로 인한 금융부실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해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에만 시행하는 대주주 적격성 유지 심사를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연구원은 창업에서 실패한 사람이 부활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청년 창업을 늘리기 위해 지식재산금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식재산금융이란 지식재산을 활용하거나 매개로 하는 금융 등을 말한다. 구정한 연구위원은 “내년 국내외 경제 여건이 불투명해 실패한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예방 차원에서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창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실패한 자영업자가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엔젤투자(기술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회사에 투자하는 행위) 관련 세제·금융 혜택을 주고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인수합병을 원활하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연구원은 또 중소기업의 유동성 위축을 막을 정책을 마련하고 국민연금이 투명한 방법으로 의결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당선인도 기관 투자자의 책임있는 주주로서의 기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연금법과 상법 등을 개정해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 "서민금융 기관 통합 관리해야"

금융연구원은 또 ▲서민전담은행 설립 ▲서민금융 지원제도의 개선방안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체계 개편 ▲소비자보호기금 설립에 관한 논의 ▲변동금리대출에 대한 금리상한제 도입 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병호 연구위원은 서민금융을 전담하는 은행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 연구위원은 "바꿔드림론이나 새희망홀씨 대출과 같은 기존 서민금융 지원 프로그램은 홍보가 안 되고 대출 조건도 까다로워 실적이 저조한 경우가 있다"며 "서민금융 지원 규모가 1조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 돈으로 은행을 만들면 차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서민금융제도는 역량이 부족한 일반인이 대출심사를 하다보니 부실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박 당선인은 18조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해 1인당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연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장기상환 대출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이는 기존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바꿔드림론'과 비슷하지만 신용회복, 서민 저금리 대출, 학자금 대출 등 기존에 있던 여러 가지 서민금융제도를 통합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구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분쟁해결제도(ADR·Alternative Disputes Resolution)를 활성화하고 소비자보호기금 설립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ADR는 소송 외에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이고 소비자보호기금은 금융기관이 파산했을 때 위법한 영업행위로 발생한 금융 소비자의 손실을 일정 한도까지 보상하는 기금이다.

박 당선인도 금융소비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 박 당선인은 약탈적 대출이나 불법추심 등을 근절하기 위해 대출소비자 보호법규를 도입하고 보험, 신용카드와 같은 각종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고객에게 위험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행위) 근절을 위한 법규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금융수수료와 금융회사의 영업 관행 등을 금융위가 소비자의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연구원이 제안한 내용을 검토해서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