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20대의 삶. 이들은 취업난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국내 기업들의 고용이 감소하면서 취업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취업준비생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대기업. 이들에게 대기업들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조선비즈 연결지성센터는 ‘집단지성’을 활용해 대기업 취업 관련 리서치를 진행했다. 총 83명의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기업 공채 지원 과정에서 각자의 경험을 보내왔다. 이후 취합된 데이터 전체를 다시 응답자에게 공개하고 자유롭게 첨부와 삭제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 정보의 정확도를 높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스펙보다는 면접과 SSAT(Samsung Aptitude Test), 현대차그룹은 영어면접과 인성, LG그룹은 시사상식과 전공 지식을 중요하게 봤다. SK그룹과 롯데그룹은 스펙을 많이 보는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삼성 "삼성의 DNA를 갖춰라"

삼성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서류나 면접보다 SSAT 준비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들은 "삼성그룹에 취업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SSAT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그룹은 대부분의 지원자를 서류 통과시키고 나서 삼성그룹의 인적성시험인 SSAT에서 상당수를 떨어뜨린다. 이는 학벌·영어·자격증 등 스펙요소보다 삼성그룹에 적합한 인재인지가 합격을 좌지우지하는 요소라는 의미다. 응답자들은 삼성그룹이 타 기업보다 학벌을 많이 따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답했다.

자신감도 강조했다. 삼성그룹 면접 경험자는 “준비해간 말을 잊어버리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대처하라”며 “면접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도 “삼성 면접관들은 난해한 질문에 포기하지 않는 지원자의 모습을 선호한다”며 “특히 부드러운 대화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순발력’도 핵심 키워드로 꼽혔다. 예를 들어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질문을 던져 창의성, 순발력, 상황대처능력을 본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토론 상황에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 ▲압박면접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쉽게 바꾸지 않는 자세 ▲튀는 행동보다는 조직에 융화할 수 있는 이미지를 보이는 자세 등을 성공적인 면접 노하우로 꼽았다.

삼성그룹에 대한 이미지는 ‘보수적’이고 ‘일을 많이 시키지만’ ‘꼭 가고 싶은’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삼성은 수직적 조직문화와 명령하달식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업무량이 많다”고 말했다.

‘삼성 운명론’을 제기한 응답자도 있었다. 그는 “SSAT의 경우 준비를 전혀 안 하고 항상 잘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공부를 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며 “삼성 DNA는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남성적인 현대차, 서류 숫자보다 인성 중요

현대자동차그룹은 남성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회사와 직원의 관계를 중시하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취업준비생들에게도 현대자동차는 채용 시에도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문화적 색깔이 확실하다. 특히 대기업인 만큼 서류 통과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학점, 어학 점수 등 '스펙'이 필요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에서는 서류에 적힌 숫자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면접을 본 응답자는 “면접에서도 야근, 회식문화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등 회사 문화에 맞는 사람을 뽑으려 한다”며 “남성적으로 분류되는 특성 중에서도 ‘자신감, 패기’를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응답자도 “시험관이 자기소개서를 자세히 읽어보기 때문에 정성 들여 작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면접에서 물어볼 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준비해 가야 한다”며 “기본적인 질문은 자소서와 이력서에 관한 것이고, 영어면접, 창의력을 측정하는 질문 등 면접내용은 다른 대기업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일단 입사에 성공하면 이후 대우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업계 1위인 만큼 연봉은 동종업계 최고 수준이다. 회사 측에서 합격자 학교에 플래카드를 거는 등 신입사원을 소중히 여긴다는 인상도 준다.

물론 현대차그룹도 널리 알려진 대기업인 만큼 입사 과정에서 명문대 졸업생들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한 응시자는 “최종 면접에 올라온 사람들이 명문대 출신이라 비명문대 출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LG, 부드럽고 압박 적은 면접

LG그룹의 기업 문화는 배려다. 이는 취업 면접 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 LG그룹 면접을 본 응답자들은 면접 분위기가 부드러워 부담이 덜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압박면접보다는 취업준비생들을 배려하고,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는 모습이 여타 대기업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면접 내용은 매우 꼼꼼하다. 응답자들은 시사 상식과 전공에 대한 지식을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LG CNS의 DBA(DataBase Administration) 면접에서는 ▲자기소개 ▲LG와 경쟁사의 차이점 설명 ▲비전공자가 지원한 이유 ▲공백 기간의 활동사항 ▲지난 공채에 떨어진 이유 ▲봉사활동한 이유 등 비교적 자세하게 면접이 진행된다. 직무 관련 면접의 경우에는 ▲일대일 글로벌 면접 ▲다대일 프레젠테이션 ▲다대다 직무역량 순으로 진행된다. 프레젠테이션의 경우 문제를 주고 한 시간 동안 준비하도록 시간을 준다.

LG화학 면접을 본 지원자는 “토론 면접은 찬성·반대를 회사가 정해주지 않고 지원자가 직접 결정한다. 이때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채점자들은 토론자가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라고 말했다.

LG그룹의 기업 이미지는 ‘2인자'라고 인식됐다. 한 응답자는 “지난해 입사한 지인은 LG와 삼성의 인적성 시험날이 같은 것을 보고 LG를 선택했다”며 “LG가 삼성보다는 좀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 SK, 자기소개서 공들여야

SK그룹의 경우 자기소개서를 채용 평가에 상당 부분 반영하기 때문에 공들여 써야 한다. 면접에서는 자신감 있게 자신을 어필하고 요점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답자들은 조언했다.

SK그룹 공채에 지원했던 응답자는 "면접 질문에 SK의 인재상을 많이 담고 있어, 그 부분에 유념해서 자소서를 작성하고 예비답안을 만들어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면접의 질문이 매우 구조화된 편이며 전공과 관련된 질문, 인적성 결과를 토대로 한 질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면접 분위기는 압박 면접보다는 지원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프레젠테이션 면접은 40분의 준비시간을 주고 10분 동안 발표와 질의응답을 한다. 프레젠테이션 면접 시 많은 자료를 주고 그 자료를 토대로 주제에 맞게 작성해 발표하도록 한다.

독특한 방식의 면접을 진행하기도 한다. 레고로 제품을 만들어 설명하거나 특정 상황을 가정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미션을 주기도 한다. 면접을 통해 뽑힌 인원들은 인턴을 거쳐 최종합격한다. 인턴은 조별로 나누는데 그 조가 최종 1등을 했다고 해서 그 조에서 가장 많은 수의 합격자가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조 활동 평가와 개인 평가는 따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생에게 SK그룹은 스펙을 많이 보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줬다. 또 그룹 이미지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내수 위주의 산업구조상 위엄이나 카리스마 있는 대기업의 이미지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대학생 응답자는 “SK가 고스펙을 선호하는 편이나 그만큼 높은 연봉으로 대우해주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고 말했다.

◆ 롯데, 인턴경험 없으면 필터링 소문

취업준비생들에게 롯데 그룹의 이미지는 '보수적'이며, '스펙중시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의 경우 '자소서는 안 보고 학벌과 스펙을 많이 본다더라'는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경험자들은 "서류 지원 요건이 토익 650점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통과 기준은 훨씬 높다"고 답했으며, '군대식 기업 문화가 강하고 여성 지원자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또 상경계열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재지원 대상자에 대한 필터링은 없지만, 백화점,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나 인턴경험 등이 없으면 걸러낸다는 응답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롯데그룹이 스펙을 그리 중시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스펙을 중시한다는 롯데백화점 면접 전형 과정에서 토익 700점대, 학점 3.4점도 있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 면접 전형의 경우, 토론식 면접으로 알려졌으나 정형화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면접 전형을 치른 한 경험자는 “면접장에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답해야 하며, 충성도를 중시한다고 들었다”며 “영어 면접에서 가산점을 받으면 거의 다 합격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경험자는 “소위 말하는 서울 명문대 졸업생들이 가는 마지노선은 롯금동(롯데, 금호, 동부)으로 불린다”며 “그러나 실제 취업 과정에서 이들 역시 롯금동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현실을 알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기타 대기업, 스펙 선호는 마찬가지

우리은행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서류통과가 가장 힘든 곳으로 알려졌다. 1차 면접은 블라인드 면접으로 지원자와 면접관이 서로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특히 면접에서는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한 압박 면접이 이어지기 때문에 부풀려 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한다. 농협은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안정적인 공기업과 비슷한 기업' 이미지로 통했다.

한화는 면접에서 기업에 대한 관심도와 충성도를 확인한다고 응답자들은 조언했다. 특히 한화의 3대 신성장 동력 같은 기본 개념은 숙지하고 면접에 가는 편이 유리하다.

이랜드의 경우에는 지원자의 스펙 중 학벌을 많이 본다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두산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사람을 위주로 뽑기 때문에 인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두산 역시 학벌이 입사 후 부서 배치에는 많은 영향을 준다고 응답자들은 평가했다.

효성중공업의 경우에는 취업과정에서 자기소개서가 없으며 독특한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는 면접 질문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중공업에 합격한 한 사람은 “직무적성 검사의 경우 계산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다”며 “모르는 문제가 있다면 찍지 말고 칸을 비워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