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이 16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일부 수출주가 악재를 만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는 최근 침체된 일본 물가를 끌어올리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겠다는 의지를 밝혀 왔다. 이 경우 엔화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그간 엔화 강세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누려 왔던 국내 수출업체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김영근 KTB투자증권 투자분석팀 이사는 “특히 자동차 업체나 IT 부품업체들은 일본 경쟁업체들과 기술 경쟁력이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엔화 약세로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국내 완성차 업체에 악재

엔화 약세는 자민당의 승리 이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17일 도쿄 외환거래소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 환율은 달러당 83.46엔으로 상승했다(엔화 가치 하락). 엔 달러 환율은 지난 9월까지만 해도 77~78엔대에서 움직였지만, 이달 들어서 꾸준히 상승하는 흐름이다.

이날 증시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각각 2.0%, 3.6% 하락했고, 현대모비스(012330)도 3.0% 내렸다. 일본 증시에서 도요타·혼다·닛산 같은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1% 안팎으로 상승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장기간 밀릴 경우,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날 에스엘(005850), 성우하이텍(015750), 만도, 평화산업(090080)같은 부품주들도 4~5% 정도 내렸다.

◆ IT 부품업체·관광주에도 일부 악재

이외에도 일본과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부분에는 대체로 악재다. 특히 일본의 무라타·TDK·다이요유덴·교세라 같은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부문이 그렇다. MLCC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같은 IT 기기에 들어가는 부품으로 부품 간 전자파 간섭현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국내에서는 삼성전기(009150)와 삼화콘덴서 등이 이를 만들고 있다. 두 업체도 이날 하루 사이 모두 2.4% 하락했다.

최현재 동양증권 스몰캡(중·소형주) 팀장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업종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기술력 면에서 이미 앞서고 있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가 없지만, MLCC 부문의 경우 부분적으로나마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고에 힘입어 일본 관광객을 끌어들였던 관광주도 이날 증시에서 맥을 못 췄다. 호텔신라(008770)하나투어(039130)가 각각 2.4%, 2.0% 내렸고, 모두투어(080160)는 3.4% 하락했다.

◆ 엔화 약세, 장기적으로 가나

다만, 새 정부의 정책으로 엔화 약세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구조적으로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근거는 일본 엔화가 더는 ‘안전자산’으로서 구실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자국 국민이 국채 대부분을 사들여, 국가부도 위험이 작다는 평가에 따라 안전자산으로 분류됐는데, 최근 부채 비율이 GDP(국내총생산) 대비 230%를 웃도는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국채를 매입할 수 있는 여력이 떨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제 신용평가사가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꾸준히 경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엔 달러 환율이 90엔까지 오를 수 있다(엔화 가치 하락)”고 보고 있다.

엔화 약세가 지속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지현 동양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BOJ)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처럼 공격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실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를 추가 발행한다면 국가 부채비율은 더 악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