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무역액이 1조달러를 넘어서며 무역규모 세계 8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해온 것처럼 수출증가가 고용증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는 미미했다. 대부분 수출 상위 기업들은 인력수요가 적은 장치산업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에게는 무역 1조달러라는 의미가 실감 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수출기업에 대해 일괄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고용창출이나 고용 파급 효과가 큰 업종과 기업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유업계 수출 10조원 늘 때 직원은 200여명 증가
12일 조선비즈가 올해 '수출의 탑'을 수상한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수출 증가가 국내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출의 탑은 1973년 정부가 수출액 1억달러를 돌파한 기업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수출 장려상'이다. 별도로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수상 실적에 따라 시중은행 금리 할인을 받거나 정부 정책자금을 조달할 때 유리해 동종업계 간 신경전도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의 경우 정유·화학 대기업들이 수출 1~3위를 싹쓸이했지만, 수출 증가와 달리 고용은 제자리 수준이거나 후퇴한 업체들이 있었다.
올해 정유업계 최초로 '250억불탑'을 받은 GS칼텍스는 2008년 '150억불탑'을 수상한 이래 4년 새 100억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직원은 2008년 3057명에서 2011년 현재 3305명으로 248명(8.11%) 늘어나는 데 그쳤다. SK에너지도 비슷하다. SK에너지는 기업분할 전인 2008년 '150억불탑'을 수상할 때 직원이 5629명이었다. 반면 올 3분기 기준으로 직원 수는 SK에너지, SK루브리컨츠, SK종합화학을 합쳐 6207명으로 수출이 120억달러 넘게 늘어나는 동안 직원 수는 578명(10.26%) 증가에 그쳤다.
수출액이 늘었지만, 계약직 수만 늘어나며 고용상황이 더 악화된 곳도 있다. 올해 '200억불탑'상을 받은 S-Oil##의 경우 100억불탑을 수상한 2008년에 비해 수출액이 2배 이상 늘었지만 2418명이었던 직원 수가 올 3분기 기준으로 208명(8.60%) 늘어난 2626명에 불과했다. 계약직은 2010년 38명에서 이듬해 131명, 올해 151명으로 늘어난 반면, 정규직은 같은 기간 2513명에서 2475명으로 38명 줄었다.
올해 '80억불탑'으로 수출 6위에 올랐던 현대오일뱅크는 '30억불탑'을 수상했던 2008년과 비교하면 직원 수가 1677명에서 2012년 1802명으로 125명(6.93%) 증가에 그쳤다.
보통 정유산업이 대규모 장치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고용이 크게 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수출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했던 정부의 주장과는 괴리가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국내 수출산업의 고용유발계수가 2009년 기준으로 14.4라고 밝혔다. 수출이 100만달러 늘면 고용이 14.4명 증가한다는 말이다. 국내 기업의 수출이 100억달러 늘어나면 14만4000명이 일자리를 갖게 된다. 그러나 4년간 수출액이 100억달러 가량 늘어난 GS칼텍스와 SK이노베이션(120억달러)의 경우 고용증가는 각각 248명과 578명에 그쳤다.
◆ 노동 집약도 높은 차업체도 수출 늘고 고용은 줄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올해 각각 '200억불탑'과 '150억불탑'을 수상했다. 현대차의 경우 2006년 '150억불탑'을 수상한 이후 6년 만에 50억달러 이상 수출이 증가했다. KEIP 고용유발계수에 따르면 이론상 7만2000개(50억달러 기준)의 일자리가 생겨야 한다. 그러나 이 기간 직원 수는 5만4711명에서 5만9589명으로 4878명(8.91%) 늘었다. 이중 1491명은 계약직이다. 올 2월 대법원이 "사내 하청제도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자 사내하청을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대신 급여는 크게 늘었다. 현대차의 1인당 직원 연평균 임금은 5700만원(2006년)에서 8900만원(2011년) 6년 새 3200만원(56.14%) 인상됐다.
기아차는 수출이 늘면서 고용을 줄였다. 2005년 '100억불탑' 수상당시 직원수가 3만2745명에서 '150억불'탑을 받은 올 3분기 현재 3만2690명으로 55명(0.16%)이 줄었다. 기아차는 2005년 1인 연평균임금은 5200만원에서 지난해 8400만원으로 3200만원(61.53%) 늘었다.
◆ 수출의 고용 유발 10년 새 절반 수준…"고용 위한 선순환 구조 고민할 때"
수출이 늘어날수록 고용이 줄거나 정체되는 현상도 10년새 심해졌다. KIEP 조사에 따르면 수출의 고용유발계수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9.4에서 1999년 31.9를 정점으로 2009년 14.4로 떨어졌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이제는 수출이 늘어난다고 고용이 증가하는 경제구조가 아니다"면서 "완성제조업체들에 대한 지원 전략 대신 실제 고용에 도움이 되는 수출 중소·중견 기업을 발굴, 지원하는 방향으로 수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기업들을 독려해 무역 1조달러에서 2조달러시대 만들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고용효과가 높은 업체들을 우선 지원해야한다는 말이다.
장윤종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센터 소장은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연구·개발(R&D)로, 또 그것이 제품생산과 실질적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국내 설비투자로 이어져 고용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며 "정부는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관계가 구축되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정욱 한국은행 조사국 팀장은 "단순한 기존 제품의 설비를 늘리는 투자는 설비 자동화로 인해 고용에 큰 영향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새로운 분야의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해서 고용 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