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건설업체 A사에 다니던 김모 부장(49)은 지난해 초 회사 구조조정으로 함께 명예퇴직을 신청한 동료 직원과 함께 퇴직금과 대출금 등 3억원의 자본금을 모아 조그마한 설비 전문 건설회사를 차렸다.
월급쟁이 직원에서 사장으로 변신한 김씨. 그는 배전설비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로 줄곧 설비 분야에서만 잔뼈가 굵은 터라 업무 지식은 물론, 그간 쌓은 관련 업계 인맥만으로도 새로 시작한 사업이 이내 연착륙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부푼 꿈도 잠시. 사업을 시작한지 2년이 다 되도록 그는 단 한 건의 공사도 따내지 못했다. 김 사장은 "거의 매달 하도급 입찰에 들어가지만 경쟁이 치열해 아직까지 수주 한번 못해봤다"며 "직원 2명의 급여와 사무실 운영비, 영업비 지출로 빠지고 나면, 이제 곧 자본금마저 바닥을 드러낼 처지"라고 털어놨다.
◆ 골 깊어지는 영세 건설업체
건설업 불황의 골이 대형사 중심의 종합건설업체에서 하도급 공사를 주로 하는 영세 전문건설업체들로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로 종합건설사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이들 회사가 발주하는 하도급 공사를 먹거리로 하는 전문건설업체들의 일감도 급감하고 있다.
문제는 일감은 줄어드는데 오히려 전문건설업체수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 건설업 구조조정으로 퇴출된 건설 기술 인력들이 잇따라 설립 진입장벽(자본금 2억원, 기술자 2인 이상)이 낮은 전문건설업 신규 등록을 하고 회사 설립에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줄어든 발주 물량을 놓고 늘어난 업체들끼리 경쟁만 치열해져 전문건설업체의 수익구조에도 악영향이 우려되는 현실이다.
건설경기 침체와 더불어 발주물량 감소, 과당경쟁에 따른 수익구조 악화 등의 3중고가 전문건설업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3중고의 불황인줄 알면서도 회사 설립에 나서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년전 다니던 건설회사 부도로 전문건설업체를 차린 박영만씨(51)는 "'배운게 도둑질'인데, 비슷한 자본금이라면 남들 다 하는 치킨집, 식당을 내는 것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시작한 사업"이라며 "아직 변변한 수주도 없지만, 비슷한 처지의 업체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것을 보면 후회도 되지만 아직 자본금을 까먹지 않은게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 부실 시공 우려 높이는 '따고 보자'식 수주 관행
발주 물량은 줄고, 업계 사정은 열악하고,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무리한 저가수주가 잇따른다. 이렇게 수주한 공사는 결국 손실 보전을 위해 자재비를 절감하거나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가 생기는 등 부실시공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실제 협회 회원사를 상대로 설문한 결과 저가 수주한 공사 손실을 보전하려고 인건비를 줄어거나 공기단축, 자재비 절감, 설계 변경 등을 한다는 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이들 모두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