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국내외 자본유출입의 변동성을 줄여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내년 1월부터 외국환은행 선물환포지션 비율 한도를 25% 축소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환은행 선물환포지션 비율 한도는 국내 은행의 경우 현행 40%에서 30%로, 외국은행 지점은 200%에서 150%로 각각 줄어든다.

해외 자금 유출입이 주로 주식이나 채권시장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과 외국환 은행들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에 아직 여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효과는 크지 않겠지만 시장 참가자들에게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중장기적인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금유출입과 환율 변동성이 클 경우 외환건전성 부담금(은행세)을 늘리는 등 추가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 지난 주 예고한 대로 실행, 정부 의지 피력

정부는 지난주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1080원선을 위협하자 초강력 구두개입에 나섰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데 이어 22일에는 최종구 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가 "지금처럼 원화 강세가 빠른 것을 그대로 두면 환차익을 기대한 자본유입이 훨씬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다음주 중 선물환 포지션 등 조치를 결론내겠다"고 외환시장을 향해 최후통첩을 했다.

정부는 예고한 대로 27일 선물환포지션 비율 한도를 축소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해외 자금유출입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 하락(원화 강세)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이후 4.5% 절상된 반면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국인 일본의 엔달러 환율은 오히려 4.6% 절하됐다.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이 거의 두달 만에 9%나 악화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환율 하락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지난주 더이상 환율 하락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데다 이날 직접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외환딜러들은 섣불리 환율 하락에 베팅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날 코스피지수가 20포인트 가까이 올랐는데도 평상시와 달리 환율 하락폭은 미미했다.

◆ 실제 효과보다는 경고 메시지로 시장 심리에 영향

정부의 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 조치는 은행들의 선물환 매수와 해외 차입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수출업체들이나 해외 펀드들은 그만큼 선물환 매도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일부 외은 지점들은 새로운 선물환포지션 비율 한도(150%)를 초과했다. 내년 1월1일까지 유예기간이 있고 오는 12월1일 이전의 기존 선물환포지션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어서 크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150%를 초과한 곳은 당장 12월1일부터는 새로운 선물환을 취급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실제 효과보다는 정부의 강한 경고 메시지가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거시건정성, 외환시장 안정성 등을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환율 하락에 대한 경고라고 보고 있다. 변지영 우리선물 연구원은 "확실히 시장에서 달러 매도 심리를 위축시키는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 이번 조치 효과 없으면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추가 조치 나올 듯

정부의 환율 방어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감안하면 이번 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 조치가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새로운 카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우선 외환건전성부담금(은행세)을 추가조치로 언급하고 있다.

최종구 차관보는 "외환건정성규제 3종 세트 중 이번에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축소했고 외국인 채권 과세는 이미 내국인과 똑같이 시행되고 있다"며 "추가 조치가 있다면 외환건전성부담금 상향조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현재 은행들의 외화차입에 대해 만기 1년 이내 20bp(1bp=0.01%포인트), 만기 1~3년에는 10bp, 만기 3~5년에는 5bp, 만기 5년 이상에는 2bp의 은행세를 부과하고 있다. 외환건전성부담금의 부과율은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법 시행령만 고치면 바로 조정할 수 있다.

만약 외환건전성부담금이 늘어나더라도 효과가 없을 때 정부가 추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를 내국인과 차별해 더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는 외국인 채권 투자에 대한 과세를 현재 내국인과 똑같이 이자소득세 14%, 양도소득세 20%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 과세 세율을 차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이 있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해 채권거래세를 신설하거나 브라질처럼 외국 자금을 국내로 유입해 환전할 때 6%의 자본유입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최악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적용되는 OECD 자본자유화 규약 때문에 자본거래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화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기존 정책으로 거시건전성이나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할 수 없을 경우에는 한시적, 일시적으로 주식이나 채권 투자에 대해 차별화된 규제를 적용할 수 있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