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전자업체 소니·파나소닉·샤프가 나란히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엔화가치 급등, 한국업체와의 TV대전 참패 등도 거론된다. 고려대 조명현 교수(경영학)는 "소비자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전자 업종에선 한번 트렌드를 놓치면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뒤집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혁신 DNA 실종과 단기 성과제의 폐해
소니 신용등급이 투기등급까지 떨어진 것은 충격적이다.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이유로 '소니스타일'을 잃어버린 것을 꼽는다. 혁신 제품 개발을 장려하던 문화가 사라지고 미국 기업들처럼 단기 성과에 안주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니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혁신 기업의 대명사로 꼽혔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며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준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가 대표적이었다. 집안의 TV를 게임기로 만들었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노트북에 디자인의 개념을 접목한 바이오 노트북PC는 소니의 독창성을 한껏 드러냈다.
소니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고속성장의 후유증을 겪기 시작했다. 특히 각 사업부별 채산제를 도입한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TV·가전·게임 등 서로 다른 사업들이 시너지를 내려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재무제표를 좋게 만드는 데만 집착했다는 것이다. 많은 돈을 투자했던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 인수도 별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시장의 기대치에 맞는 새 제품이 나오지 못하게 됐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위기 상황에서 미국인 하워드 스트링거를 CEO(최고경영자)로 데려온 것도 패착으로 꼽힌다. 그는 재무제표 중심의 경영에 익숙하다는 평을 들었다. 근본적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안주형 CEO를 데려왔다는 지적이다.
◇한국 업체에 밀리고, 엔고에 경쟁력 상실
기존 기술을 과신하다 보니 주력인 TV시장 대응에 실패했다. 소니는 아날로그 브라운관 TV의 대명사였다. 이 때문에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인 LCD(액정디스플레이) TV 도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본사 임원회의에서는 삼성전자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파나소닉도 소니의 전철을 답습했다. 1980~1990년대 고도 성장기에 "하드웨어와 시너지를 내겠다"며 미국 유니버설 영화사를 인수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소니가 브라운관TV에 매달린 것처럼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TV 기술에 집착한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PDP는 자신들이 독보적 기술력은 갖고 있으나 대세는 이미 LCD로 넘어간 뒤였다.
2000년대 말부터는 설상가상으로 잇따라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TV 부문에서 한국업체들과 경쟁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거나, 시장을 더 많이 내줘야만 했다. 일본 샤프도 최근 투자등급이 강등되고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니의 히라이 가즈오 CEO는 "디지털카메라 부문 성과가 좋고, 의료장비와 초고화질TV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어 입지 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