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자가 이렇게 많이 늘어나는 이유요? 저희도 '이거다' 하는 원인을 못 찾았어요."

요즘 기획재정부와 청와대의 내로라하는 경제 관료들에게 "체감경기는 겨울에 접어든 지 오래인데 우리 고용지표는 왜 이렇게 좋으냐"고 물으면 한숨과 함께 이런 답이 돌아온다.

정부는 매달 취업한 사람 수가 1년 전에 비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발표한다. 그런데 이 수치가 올 들어 월평균 46만명을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매년 50만명 정도씩 생산가능인구(15~63세)가 늘어나는데, 그 중 60%, 그러니까 30만명만 일자리를 잡아도 정부는 고용이 '평년작' 수준이라고 본다. 우리 경제의 경제활동참가율(생산가능인구 중 경제활동 하는 사람의 비중)이 60%이니 이 비율을 유지하는 선이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취업자 증가 평균치 46만명은 이를 크게 뛰어넘는 좋은 실적이다.

6분기 연속 전분기 대비 0%대 성장을 이어가며 슬로모션형 불황이 심화되고 있는데 취업자 통계는 이렇게 잘 나오는 이유가 뭘까?

◇고용 악화도 슬로모션형이기 때문?

유력한 설명의 하나는 고용 악화도 경기 침체처럼 슬로모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기 청와대 정책실장은 "실물경제 악화가 고용지표에 반영되기는 하겠지만 그 시차가 예전보다 더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억원 기재부 종합정책과장도 "성장 위축과 고용지표 하락의 연결 고리가 다소 늦게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크다"고 했다.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그 해 고용은 그런대로 유지됐지만 2009년에는 취업자(월평균)가 7만2000명 줄어들었다. 정부 내에선 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취업자 숫자가 회복되는 과정이 지금까지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두 번째 가설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대거 창업에 나선 것이 취업자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50대 초반에 직장에서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쌈짓돈으로 창업에 나서고, 이것이 50대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져 고용 지표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보면, 작년 말 171만명 수준이던 50대 자영업자 숫자가 올 상반기에 176만명을 넘어섰다. 이런 종류의 창업은 안정적인 상용직 근로자가 불안한 개인사업자로 바뀌면서 수치상 일자리만 늘리는 것이어서 고용의 질 측면에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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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올해 들어 안정적으로 50% 이상을 넘긴 것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사회복지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 고용 호조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김범석 기재부 인력정책과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뚜렷해진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가 고용지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아직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올해 7월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제조업 일자리다. 제조업 일자리는 작년 8월 이후 줄곧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7월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10월에는 14만개나 늘었다. 조건이 열악한 중소 제조업 일자리라도 잡으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 때문인지, 올해 시행 대상이 확대된 중소기업 청년 인턴제의 효과 때문인지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기재부 관계자는 "통계로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설명은 아직 못 찾았다"고 말했다.

◇내년 이후 고용지표 악화는 불가피

고용지표가 왜 좋은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저마다 다양하지만, 고용문제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것은 내년부터 고용지표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년 초부터는 취업자 증가 수치가 평년 수준인 30만명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과 중노령층이 고용 한파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망의 근거는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소비·투자 심리의 위축이다. 매에 장사가 없는 것처럼 슬로모션형 불황이 장기화하면 고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지가 최근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20대 그룹 최고전략·재무 책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개 그룹만 '올해보다 채용 규모를 늘리겠다'고 했고, 16개 그룹은 '올 수준을 유지하거나 줄이겠다'고 답했다. 나머지 3개 그룹은 경영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채용 규모를 답하지 않았다. '여기에 국내 10대 그룹의 상당수는 계열사 수를 5~10% 줄이겠다는 목표를 잡고 내년까지 '불황형 구조조정'을 벌일 예정이어서 고용 시장의 문이 더 좁아질 수 있다.

또 10월부터는 자영업자 수도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준협 위원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제조업 일자리 증가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설 경우 취업자 증가 수치가 내년에는 20만명대 중반까지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