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 경기 침체로 국내 기업들은 위기 경영에 돌입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위치한 현대차공장. 2 정비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정비사. 3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에쓰오일 온산 공장의 야간 전경 모습.

세계경제가 위기다. 유럽 재정 위기와 미국·중국의 경기 둔화는 아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민간 경제 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는 최근 "세계경제가 향후 10년간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 경제도 동반 추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콘퍼런스보드는 우리나라의 2019~2025년 성장률 을 1.2%로 예상했다. 전망치를 제시한 55개국 중 46위 수준이다. 바트 반 아크 콘퍼런스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제 회복이 예상되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들의 성장 둔화 속도가 더 빨라 이로 인한 세계경제의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저성장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국내 기업들, 선택과 집중·시장 선도·내실 경영…

국내 주요 기업들은 비상 경영 체제로 속속 돌입하고 있다. 원가 절감과 현금 보유 확대, 계열사 통폐합, 내년도 투자 계획 변경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투자를 줄이는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면서 선택과 집중에 주력할 전망이다. 전체 수익 구조에서 스마트폰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우려를 반영해 과감한 체질 개선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근 임원회의에서 위기 상황 돌파를 위한 방법으로 선제 대응과 발 빠른 대처를 주문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내년 사업 계획의 키워드로 '시장 선도'와 '실행'을 꼽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달 열린 임원 세미나에서 "시장 선도를 위해선 실행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며 "철저한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각오는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내년에 내실 경영에 치중할 전망이다. 현대차는 지난해까지 1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위한 조직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시장 공략하고, 비용을 줄여라"

마이클 해넌 스탠퍼드대 교수는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시기에는 일거에 혁신하려는 기업보다 작은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기업의 생존 확률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경제 위기에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성장의 발판이 될 신흥시장을 공략하고, 저비용 구조로 사업 모델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세계 소비재 시장의 2위 업체인 유니레버가 신흥 시장을 공략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 시장 1위는 P&G이지만 신흥국 시장에서의 매출은 유니레버가 앞서고 있다. 2011년 유니레버의 매출액 465억유로 가운데 신흥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56%였다. 이를 2020년까지 70%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반면 P&G의 신흥시장 매출 비중은 35% 수준에 머물고 있다.

1 전 세계 경기 불황에 직면한 국내 기업들은 최고 수준의 제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핵심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사진은 LG전자 전략 스마트폰'옵티머스G' 에 들어가는 유리원판을 들고 있는 LG디스플레이 직원. 2 스테인리스 냉연코일의 표면 품질검사를 하고 있는 포 스코 직원. 3 지난 10월 '혁신기술 기업협회의회 전시회'에 참석해 부품 협력업체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권오현(왼쪽) 삼성전자 부회장.

유니레버가 신흥국 시장에서 경쟁사인 P&G보다 앞설 수 있었던 건 현지 시장에 적합한 세제, 샴푸 등의 신제품을 개발한 덕분이다. 유니레버는 동남아 시장 진입 초기에 제품을 소형화하고, 제품값을 낮추기 위해 샴푸를 플라스틱 대신 비닐 용기에 넣어 판매했다.

'아래로부터의 마케팅'도 주효했다. 제품 홍보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비자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현지 밀착형 유통 채널을 발굴한 것이다. 예컨대 문맹률이 높은 인도에서는 활자 매체보다 효과가 큰 구전(口傳) 마케팅을 구사하기 위해 5만여명의 방문 판매원을 활용했다. 업계에선 "콧대 높은 글로벌 브랜드가 아닌 친근한 기업 이미지를 심은 것이 성공 요인"이란 평이 나왔다.

유니레버의 이런 전략은 P&G와는 대조적이다. P&G는 선진국에 팔던 고가제품을 그대로 신흥시장에 출시하며 본사 주도의 영업 전략을 고수했다. 그러다 최근 선진국 경기 침체 이후 신흥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P&G는 직원들의 복리후생비 등 간접비를 줄여 100억달러의 자금을 마련해 이 돈을 모두 신흥국에 투자할 방침이다. 자금력을 앞세워 신흥국 매출 비중을 2015년까지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신흥 시장을 선점한 유니레버 때문에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상황이다.

벨기에의 수퍼마켓 체인인 콜루잇은 줄인 비용만큼 합리적인 가격 전략을 세워 성공한 경우다. 콜루잇의 지난해 매출액은 73억유로. 2007년보다 8.7% 성장한 것이다. 1950년 설립 때부터 콜루잇의 사업 목표는 '최저가'였다. 콜루잇은 사업장 전체의 에너지 소비 실태를 연구, 에너지 비용을 줄인 만큼 소비자 판매가를 낮췄다. 풍력과 태양광을 포함해 유기 폐기물을 발효 처리한 재생에너지를 자가발전, 전체 사용 전력의 80% 충당했다. 경비 절감을 통한 가격 인하 노력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콜루잇의 저가 전략을 더욱 신뢰하게 됐다.

◇"핵심 사업의 시장 장악력을 높여라"

저성장기에는 신규 수요가 감소하고, 고객을 빼앗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어느 기업이 시장 장악력을 갖고 있느냐가 성장성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핵심 사업 분야에서 저가 우량 매물이 나올 때 신속하게 M&A(인수·합병)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핵심 사업 분야에선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 커뮤니케이션 기업인 WPP의 성장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WPP는 적극적인 M&A를 통해 2009년 옴니콤을 제치고 세계 최대 광고 기업이 됐다. 2008년 이후 옴니콤(49건)의 두 배에 육박하는 94건의 M&A를 추진해 세계 광고시장을 점령한 것이다. 창립 25년 만이었다. 이 회사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도 매년 13.2%씩 성장, 작년에 매출 156억달러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