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가 연비 경쟁에서 수입차에 크게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국내에 시판돼 있는 '신(新)연비' 기준 '연비 베스트 10' 차종에 국산차는 기아자동차의 경차 모닝 CVT(9위)만 유일하게 포함됐다. 유럽 디젤차가 1위를 포함해 8개 차종을 휩쓸었고, 일본 하이브리드카인 렉서스 ES300h가 6위에 올랐다. 뛰어난 연비를 자랑하는 디젤, 하이브리드 등 수입차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국산차들은 경차·소형차 시장을 장악하고서도 연비에서는 밀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부터 모든 차종에 신연비 표기가 의무화되면 수입차와 국산차의 연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구(舊)연비 보다 측정 조건을 가혹하게 해 실제 연비에 좀더 가깝게 만든 신연비 제도를 올해 4월 출시하는 신차부터 의무화했다. 내년 1월부터 모든 차량에 신연비 표기가 의무화되면 기존 구연비 표기 차량의 연비가 10~20% 정도 나빠질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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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차종의 75%를 차지하는 구연비 표기 차종의 '연비 베스트 10'에는 국산차가 한 모델도 없다. 현대·기아차 국내영업 관계자는 "수입차 연비가 국산차보다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판매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산차 업체가 내수 시장에서 대당 판매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크고 비싸고 화려한 차에만 매달려 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연비 개선 모델을 내놓을 때 항상 차값을 올린 것도 소비자들의 불만거리다. 모닝 CVT는 기존 모델보다 연비가 7% 향상됐지만 차값이 52만원 올랐다. 현대차 엑센트 1.6디젤은 가솔린 모델보다 연비가 19% 좋지만 차값이 206만원이나 비싸다.

일본 렉서스가 최근 고급 세단 ES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하이브리드 모델 가격을 일반모델보다 100만원 싸게 책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엔진 크기가 일반 가솔린 모델보다 작긴 하지만 전기모터 등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달아야 해 가격적 배려를 충분히 하지 않고는 더 싸게 내놓기 어렵다. 독일 수입차들도 디젤 모델의 차값을 동급 휘발유 모델과 별로 차이 나지 않게 하는 전략으로 판매를 늘리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지적도 많다. 유럽·일본처럼 연비가 높은 차, 소형차에 혜택을 주기는커녕 반대로 가는 경우도 있다. 단적인 예로, 지식경제부가 지난 9월 내놓았던 개별소비세 1.5% 포인트 인하 정책은 모든 차에 일률 적용해 기름 소비가 많은 고급 차나, 비싼 수입차를 사는 사람이 더 많은 금액의 혜택을 받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비가 높은 경차는 개별소비세가 원래 면제되기 때문에 아예 혜택이 없었다.

지난달 수입차 판매는 전년보다 46% 늘어난 반면, 국산차는 2% 증가에 그쳤다. 연비 좋은 차, 소형차에 혜택도 주지 않고, 게다가 국내 자동차 산업을 부양하겠다는 정책 목표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다.

또 정부는 환경부 주도로 차량의 크기·배기량에 관계 없이 연비가 높을수록 보조금을 주고, 낮을수록 벌금을 매기는 '저탄소협력금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지만, 3년째 보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