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 L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5년째를 맞지만 세계경제는 안정은커녕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유로화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불거지고, 중국, 인도 등 고성장을 구가하던 국가들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미국의 경제연구소인 콘퍼런스보드는 향후 10년간 세계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세계경제 성장률은 올해 평균 3.2%를 기록한 뒤 계속 추락해 2019~2025년에는 연평균 2.5%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 전망은 더욱 충격적이다. 한국은 2013~2018년에 연평균 2.4% 성장한 뒤, 2019~2025년에는 연평균 1.2% 성장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1세기 초반 세계 호황은 예외적

사실 21세기 첫 1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장이 빠른 시기에 속한다. 리먼 사태 이전인 2000~2007년의 세계경제 성장률은 연 4.2%에 달했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은 연 3.9%로 안정됐다. 저성장과 높은 물가상승률로 점철된 1970년대나 외환위기가 남반구를 휩쓸던 1980년대와는 달리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1990년대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1990년대 말에 금융위기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국가를 덮쳐 2000년대의 고성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연평균 세계경제 성장률은 1970년대 4.1%, 80년대 3.2%, 90년대 3.1%였는데 2003~2007년 중에는 4.8%에 달했다. 호황의 요인은 공급요인과 수요요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세계화의 진전과 중국, 인도 등 인구 대국의 시장경제 편입이 주원인이었다. 세계화는 생산시설의 재배치, 아웃소싱 확대, 자본 이동 자유화를 통해 생산의 효율화로 이어졌다. 또한 인구 대국의 시장경제 편입으로 전 세계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가 14억6000만명에서 29억3000만명으로 배가(倍加)됐다. 즉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함에 따라 공산품 가격이 호황 속에서도 안정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수요 부문에서는 선진국의 부채 확대가 성장을 견인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장기간 지속된 전 세계적인 저(低)금리와 유로화 출범 이후 시작된 남유럽 국가의 차입(借入) 확대는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격 상승과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 2000년 말 국내총생산(GDP)의 220% 수준이던 미국의 총부채는 2008년 말에는 296%로 늘었고, 영국은 310%에서 487%로, 스페인은 192%에서 337%로 각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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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감축 세계경제, 정상 상태로 복귀 중

하지만 이 같은 생산 증대 효과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디레버리지(deleverage·부채 감축)가 지속되고 있다. 선진국에선 가계 부문의 디레버리지가 이미 진행 중이고, 정부가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은행 시스템을 살린 여파로 정부 부문의 부채도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선진국의 수요 감소가 장기화되면서 신흥국들의 성장률도 점차 낮아지고, 이 과정에서 잠재된 불안 요인이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인다. 인도와 브라질은 인프라, 규제, 치안 등의 측면에서 불안을 노출하고 있다. 낮은 물가상승률을 가능케 했던 노동 공급도 바닥을 드러낼 조짐이다. 일례로 중국의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15% 내외로 치솟았다. 고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들이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콘퍼런스보드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고속 성장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따라서 최근의 저성장에 대한 두려움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호시절에 대한 향수일 뿐이며, 실상은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하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향후 5년 동안 세계경제의 성장률은 2000년대 중반보다는 낮아지지만, 1980~1990년대 평균인 3% 수준의 성장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 성장세 한 단계 더 하락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성장률이 1990년대 6%대에서 2000년대 4%대로 크게 떨어졌다. 문제는 앞으로 성장세가 다시 한 단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가장 큰 요인은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노인 인구 1인당 생산가능인구도 2012년 6.5명에서 2020년에는 4.5명, 2030년에는 2.6명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 투자율의 추세적 하락을 감안할 때 자본의 추가적인 투입을 통한 성장률 제고도 어려워지고 있고 지식의 축적과 혁신을 통한 생산성 증가도 여의치 않다.

더구나 세계경제 위축으로 성장 동력 역할을 해온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고, 안으로는 과도한 가계부채 문제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산 가격 하락이 진행되면 소비가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향후 5년간 25% 줄어들 경우 민간 소비가 연평균 1.4%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의 부진은 가계부채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자영업자는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부담이 26.6%에 달한다. 임금근로자의 두 배 수준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수출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내수는 동력을 상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은 GDP 성장률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러왔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 재정위기가 장기화하거나 미국, 중국의 성장률이 급락하며 가계부채와 자영업 문제까지도 불거지면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 성장률에도 크게 못 미치는 침체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