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양적완화와 우리나라의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 여건으로 원화 값이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수출기업이 신음하고 있지만 원고(高)는 구매력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내수 진작을 도모하는 카드로도 꼽힌다. 그러나 '원화 강세에 따른 원자재 수입 비용 감소→생산자물가 하락→소비자물가 하락→소비진작'의 선순환을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입업체들이 원화 강세에 따른 원가 절감을 소비자 가격엔 반영하지 않거나 소폭의 가격 인하에 그치기 때문에 체감 물가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불경기에 소득이 늘지 않는데 값이 싸졌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환율 하락-물가 하락' 효과 글쎄
전날(30일) 서울 외환 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4.3원 하락한 1091.5원에 마감했다(원화 가치 상승). 지난 15거래일간 환율이 오른 것은 단 3거래일에 불과했다. 이달 들어서만 1.9% 떨어졌다.
한국은행 조사국의 거시경제 모형에 따르면 환율이 1%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0.08%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 환율 흐름이 실제 국내 물가에 반영되기까지는 품목에 따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소비자 물가 구성 항목 중 수입재의 비중은 17%로 크지 않다. 환율 하락이 체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한은도 지난 7월 발간한 물가 보고서에서 소비자 물가 편제 대상엔 서비스 품목의 비중이 높아 환율 하락에 따른 생산자 물가 변동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은 "환율 하락으로 수입품이 싸졌다면 국내 가격도 상응하는 수준으로 떨어져야 하는 게 맞지만, 가격은 그대로 가거나 조금 내리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환율 하락은 해외 여행이나 유학 비용엔 곧장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기업들이 경감한 원가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시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 소득 늘지 않고서야 '환율 효과' 미미
만약 원화 강세로 수입 물가가 싸져 소비자 물가가 내려가는 효과가 있더라도 경기 여건이 좋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소비 확대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한은 관계자는 "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이라는 '가격 변수'가 변했다고 해서 소비가 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창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 시점은 투자나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엔 경제 불확실성이 상당히 크다"며 "환율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3분기를 기준으로 보면 경제성장률은 원화 가치 절상률에 못 미쳤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로 0.2%,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145.4원에서 111.4원으로 3.1% 절상됐다. 경제 성장 속도보다 원화가치 상승 속도가 훨씬 빨랐단 얘기다.
김윤기 실장은 "우리나라는 수출 증가를 통한 선순환이 돼야 소비가 늘지, 소비만 따로 증가하기는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전날 발표된 9월 통관 기준 수출은 14개월만에 최대치를 기록, 경상수지 흑자폭이 확대됐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든 '불황형 흑자'는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