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시에 있는 'W 호텔'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호텔에서 바라보는 타이베이 시내의 멋진 야경이고, 다른 하나는 1층 로비에 설치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조명이다.
'움직이는 벽(Livingshapes interactive wall)'이라 불리는 이 조명은 멀리서 보면 손바닥만 한 유리조각을 바둑판 형태로 수백장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다가가면 각각의 유리조각이 마치 환영이라도 하듯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가까이에서 손짓하거나 말을 건네면 주변의 소리와 움직임을 감지한 조명이 다양한 형태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살아있는 조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이 전시물에 쓰인 광원(光源)인 OLED는 전류가 흐르면 스스로 빛과 색깔을 낼 수 있다. LED(발광다이오드)가 쌀알 만한 빛의 '점'이라면 OLED는 넓게 퍼지는 '면(面)광원'이다. 국내에서는 삼성과 LG가 OLED TV 생산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디스플레이용 부품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는 OLED를 조명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다. 미국 시장 분석 전문업체 나노마켓(NanoMarkets)은 현재 형성조차 되지 않은 OLED 조명 시장이 2017년에는 63억달러, 우리 돈 약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양한 디자인, 긴 수명…궁극의 광원
OLED 조명의 장점은 기존 조명과 달리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OLED는 두 장의 얇은 유리나 플라스틱 필름 사이에 각종 유기물과 전극을 이어 붙여 만드는데, 밑바탕이 되는 유리·필름의 형태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든 제작할 수 있다. 둥근 형태의 백열등이나 막대 모양의 형광등처럼 고정된 형태를 띠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구부리거나 둘둘 마는 형태의 디자인도 가능하다. 최근 OLED 조명이 호텔이나 고급 전시장에 주로 설치되고 있는 것도 이처럼 형태가 변화무쌍한 OLED의 장점을 살린 것이다.
요즘 TV 생산에 사용되는 LED 역시 '도광판'이라는 플라스틱 소재에 끼우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르는 모양 그 자체로 조명이 되는 OLED처럼 자유자재로 변형은 불가능하다. 로라 애쉬튼 필립스 조명사업부 부사장은 "타이베이의 W 호텔 외에 스포츠카 브랜드인 애스턴 마틴(Aston Martin) 전시장 등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장소에서 OLED 조명이 각광받고 있다"며 "OLED는 이른 시간 내에 모든 조명을 대체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OLED 조명의 또 다른 장점은 긴 수명이다. 아직 상용화된 제품이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네덜란드 필립스가 만든 OLED 조명 '루미브레이드'의 경우, 수명이 최장 1만 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0시간 내외면 수명을 다하는 백열등보다 10배 정도 길고, 형광등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형광등은 이미 세상에 나온 지 80년 가까이 된 옛날 기술이고, OLED 조명은 이제 막 상용화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수명이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효율 역시 현재는 1와트(W)당 50루멘(㏐·밝기의 단위) 이하로 70루멘 안팎인 형광등에 다소 못 미치지만, 2018년쯤에는 100루멘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조명 '빅3' OLED 시장 선점 전쟁
이처럼 OLED가 차세대 조명용 광원으로 떠오르자 세계 3대 조명회사인 필립스·오스람·GE는 일찌감치 OLED 조명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재 OLED 조명 양산에 가장 근접한 회사는 필립스다. 필립스는 2004년 독일 아헨 지역에 OLED 센터를 설립했으며 지난해에는 4000만유로(575억원)를 투입해 세계 최초의 OLED 조명 생산 공장을 만들었다. 현재 아헨 공장에서는 가로 세로 10㎝ 크기의 OLED를 생산할 수 있다.
100년 전통의 조명업체 오스람 역시 시험 생산 라인을 준비하고 OLED 조명을 생산하기 시작한 상태다. 시험 라인인 만큼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본격적인 상용화의 막바지 단계에 있다. 귄터 베네만 오스람 CEO는 "OLED는 산란광(넓게 퍼지는 빛)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유용한 기술"이라며 "지난해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OLED 생산 시설을 준공한 이후 다양한 OLED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GE 역시 글로벌리서치센터를 중심으로 OLED 상용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LG화학이 가장 적극적이다. LG화학은 충북 오창 공장에서 가로 세로 10㎝ 크기의 OLED 조명을 시범 생산하고 있다.
김영모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연구원은 "OLED의 면적을 넓게 만들수록 상용화에 유리하기 때문에 업체들의 연구·개발은 면적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르면 내년쯤이면 조명 시장에서 OLED 제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