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촌에 사는 주부 박 모씨(45)는 2년 전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파트 잔금 납부일을 앞두고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으려고 했으나 은행 대출창구에서 정부의 대출 규제로 추가 대출이 힘들다는 말을 들은 탓이다. 2년 전 시가 5억원이 넘던 아파트 값은 4억원에도 팔리지 않는 상황.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잔금을 납부하려던 당초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다. 이러던 차에 박 씨는 저축은행에서는 집값의 최고 80~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출모집인을 찾았다. 대출모집인은 “개인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오면 된다”며 “세무서에 가서 인터넷쇼핑몰을 한다고 얘기하면 사업자등록증을 바로 떼어준다”고 박 씨에게 자세한 요령까지 알려줬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세무서의 허술한 개인사업자등록증 발급체계를 악용한 편법 또는 불법적인 주택담보대출이 광범위하게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이 기업대출로 분류돼 DTI(총부채상환비율·대출자 소득에 따라 대출 금액을 제한하는 제도)와 LTV(담보인정비율 ·주택가격대비 대출비율)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해 온 것이다.

대출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챙기는 대출모집인은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허위 개인사업자등록증 발급 요령을 알려주며 대출을 부추겨 왔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태 이후 이렇다할 수익모델이 없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당수의 저축은행들은 개인사업자 등록증만 가져가면 묻지마 대출을 해주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은 합법적이든 편법적이든 간에 집값의 80% 이상인 경우가 많아 지난해 이후 집값 하락을 감안할 때 대다수가 ‘깡통주택’(경매에 집을 넘겨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주택)으로 전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은 집을 잃고 저축은행은 부실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편법적인 개인사업자 주택대출은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주택대출 규모로 추산되는 2조원대 중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조단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은행권의 대출규제 강화로 돈을 못 빌린 사람들이 은행 보다 2~3배 비싼 고금리에 이같은 제2금융권의 편법적인 개인사업자 주택대출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금융당국은 실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빚 권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모집인과 저축은행 합작품‥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지난 18일 만난 S캐피탈의 대출모집인은 "아파트 담보대출은 보통 70%까지 해주지만 사업자금으로 하면 80%까지도 가능하다"며 "사업자금 용도로 대출받으려면 사업자등록증만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이 모집인은 "DTI 규제 때문에 돈이 필요한 사람은 다 사업자등록증 내고 대출받는다"고 전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09년 7월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지속되자 만기 10년 이하 또는 만기 10년 초과이면서 담보가액이 6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의 LTV를 60%에서 50%로 강화하고 그해 10월부터 저축은행의 아파트대출 LTV도 기존 70%에서 60%로 강화했다. 그러나 대출 심사가 느슨한 상당수의 저축은행은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으면 DTI와 LTV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편법으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저축은행은 개인이 사업자등록증을 가져오면 집값의 100%까지 대출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어렵지만 대출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일부 지점은 사업자 등록증이 있으면 실제 사업을 하는지는 따지지 않고 담보에 따라 LTV 100%까지 대출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 등 9개 금융회사가 지난해 서울지역에서 취급한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 4495건(9377억원) 중 4.12%인 185건(541억원·금액기준 5.77%)이 사업수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대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 허술한 사업자등록증 발급절차‥누구나 10분 만에 뚝딱

편법적인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출발점인 사업자등록증은 세무서를 방문하면 약 10분 만에 바로 만들 수 있다. 지난 17일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직접 송파세무서를 찾았다. 구내에 비치된 민원서류작성대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사업자등록 신청을 선택한 다음 개업일(혹은 개업예정일)을 입력하면 번호표가 발부된다. 번호표를 들고 창구로 간 다음 '어떤 사업을 할 것이냐', '주소와 상호가 무엇이냐', '간이과세냐, 일반과세냐' 등의 3~4가지 간단한 질문을 받고 약 3분을 기다리면 바로 사업자등록증을 받을 수 있다. 등록증을 발급받는 데 드는 비용은 없었다.

한 대출 모집인은 "업종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번역하는 것으로 하고 사는 집을 주소로 하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며 "등록증 중에선 대리운전 등록이 가장 쉽다"고 귀띔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국 개인사업자는 지난해 말 519만5918명으로 2003년 363만5511명에서 매년 약 19만명씩 신규로 늘고 있다. 2003년 이후 매년 평균 78만7769명의 개인사업자가 폐업하지만 약 98만명이 매년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있다.

사업자 등록 휴폐업은 신고제로 운영된다. 폐업해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다만 6개월마다 해야 하는 부가세 신고를 하지 않으면 세무서 직원이 사업장을 조사하고 사업을 하지 않는 곳은 직권으로 폐업 조처를 내린다.

그러나 일단 사업자등록증을 이용해 대출을 받으면 나중에 폐업해도 만기를 연장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한 대출 모집인은 "사업을 하더라도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어떻게 확인을 하겠나"라며 "대출받고 3개월 후에 사업자 등록 폐업 신고를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사업장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보겠지만 집에서 개인 사업을 한다면 실질적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며 "대출자의 말을 믿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자녀 유학자금이나 결혼자금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이 대출 모집인과 짜고 사업 목적이라고 하면 은행은 거짓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우리금융저축은행으로 통합된 솔로몬 저축은행이 지난달 첫 통합영업을 시작했다. 서울 테헤란로 우리금융저축은행 본점 영업부에서 고객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