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굴지의 전자회사 회장도 이곳을 통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차를 구입하셨죠.”

18일(현지시각)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30여분을 달리자, 아팔터바흐의 푸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벌판에 무슨 자동차 공장이 있을까 싶지만, 좁은 1차선 도로를 타고 10여분을 더 들어가자, ‘AMG’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별한 출입구도 없고 보안요원도 보이지 않아, 이곳이 공장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벤츠 AMG 독일 본사 모습.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두두둥~’ 중저음의 AMG 배기음과 함께 위장막을 씌운 차량이 지나갔다. 버스에 내려 주위를 살피자, 평균가 1억원 이상의 AMG차량 수십여대가 이곳이 고성능차의 ‘성지(聖地)’임을 확인시켜줬다.

◆ 돈 주고도 못사는 세상에 하나뿐인 '차'들의 고향

메르세데스벤츠의 AMG 브랜드는 1967년 다임러·벤츠 연구소에서 일하던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흐트와 그의 동업자 에버하드 멜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C36 AMG를 시작으로 SLS 63 AMG 등 고성능 차량 23차종을 선보였다. 특히 현재 내년 출시를 목표로 'A 45 AMG'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 차량에는 2.0 터보 엔진과 7단 스포츠 변속기(DCT)가 탑재되며, 4륜구동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SLS 63 AMG

프리드리히 아이클러 AMG 파워트레인 개발 디렉터는 “A 45 AMG는 우리의 판매실적에 크게 기여할 차량 가운데 하나로 젊은 세대나 젊은 마음을 가진 어른들을 위한 차”라면서 “내부적으로 현재 2만대 수준(22개 차종)의 판매량을 AMG 탄생 50주년인 2017년까지 3만대(30개 차종)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AMG 차량을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개조해주는 개인화 작업을 하는 ‘퍼포먼스 스튜디오’도 방문했다. 이곳에는 SLS 63AMG, SL 63AMG, G 63 AMG 등 보기만 해도 ‘억’소리가 나는 수퍼카들이 줄줄이 작업 중이었다. 이 가운데 공장 한편에 있는 G바겐은 고객의 주문에 따라 차량 외관이 독특한 황금무광색으로 도색돼 있었다. 값비싼 차량이 더 값비싸게 개조되는 이곳은 그만큼 유명인들의 차량도 많이 지나쳐 갔다.

롤랜드 가이스트링어 AMG 영업담당 매니저는 “우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차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그것은 고객이 원하는 일”이라면서 “여기서는 시트가죽, 마감소대, 실밥, 스티어링 휠(운전대), 캘리퍼 색상 등 소비자가 원한다면 모든 것을 만들어 줄 수 있으며, 일부 로열패밀리는 가문의 로고를 박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고객들도 많이 있다”면서 “한국의 큰 전자회사 오너 분께서 주문한 차도 이곳에서 개조됐다”면서 귀띔했다.

실제 이곳 퍼포먼스센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손님이 자신이 쓰던 파란색의 ‘목욕타월’을 가지고 와서 차량의 실내외 색상을 목욕타월 색상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결국 이 사람은 SLS 63 AMG 등 총 4대의 차량을 구입했다. 또 한 고객은 영화 속 ‘007’차량과 같은 개조를 의뢰했다. 실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바겐 방탄차를 기반으로 개발된 이 차량에는 위장가스가 살포되며, 뒤범퍼에서는 못을 떨어트릴 수도 있는 특수장치도 장착됐다.

엔진 테스트 모습. 엔진이 뜨거워지면서 연결된 철구조물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

가이스트링어 매니저는 향후 개발할 AMG의 신규차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소수의 고객을 위한 12기통 G클래스를 제작할 예정이며, 향후 5년간 7개의 신규차종을 투입할 계획”이라면서 “SLS 블랙시리즈를 비롯해 A클래스, CLA클래스 AMG 소형차 부문에서도 다양한 AMG 차종을 선보여 고객들에게 아스팔트 아드레날린(운전을 통해 느껴지는 흥분)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AMG, '1인 1엔진' 원칙고수…"완성된 엔진에는 엔지니어의 싸인 플레이트 부착"

이곳 AMG 공장에는 총 1200여명의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800여 명은 개발자이고, 63명만 엔진 조립을 담당한다. AMG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1인 1엔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총 26단계의 엔진생산 공정을 한명의 엔지니어가 책임지고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방문한 AMG 엔진공장에는 자동차 공장을 상징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작업자가 엔진을 올려놓고 작업할 수 있는 이동 카트가 존재했다. 이곳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생산 중인 엔진을 이동카트를 통해 작업장을 이동하면서 ‘ㄷ’자 형태의 작업장을 한 바퀴 돌면 모든 생산이 끝나게 된다. 이후 자신의 싸인이 인쇄된 플레이트를 엔진에 부착하게 된다.

자신의 네임(이름) 플레이트를 갖기 위해서는 3~4년의 교육이 필요하다. 실제 AMG 엔진공장은 철저한 팀 단위로 운영되고 있으며, 스승과 제자가 있는 것처럼 자기의 명찰을 받을 때까지 스승이 제자를 교육 시킨다.

니코 로즈버그 벤츠 F1 드라이버가 AMG 엔진공장 엔지니어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한명의 엔지니어가 하루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엔진 개수는 2~3개 정도, 이날 공장 내 현황판(생산목표가 나온 모니터)에 표시된 엔진생산 개수는 총 34대(C 63 AMG엔진 33대·SLS 63 AMG엔진 1대)로 이 가운데 19대(C 63 AMG엔진 18대·SLS 63 AMG엔진 1대)가 완성된 상태였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등 하루에 수만대를 생산하는 일반 완성차 공장의 생산량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엔진은 영국의 수퍼카 브랜드 애스턴마틴의 차량에도 장착된다. 출력과 토크 등 동력성능 부분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엔진공장 한편에서는 생산된 엔진에 대한 테스트를 위해 한 작업자가 엔진을 테스트장비에 조립 중이었다. 이곳에는 총 9개의 엔진시험실을 이날 실제 테스트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한번 엔진을 장착하면 몇 주간 엔진을 고속주행, 도심주행 등 주행환경에 맞춰 테스트를 진행한다.

퍼포먼스 스튜디오에서 제작 중인 특수 G바겐 차량의 모습

가이스트링어 매니저는 “이곳에서는 개발 중인 엔진을 비롯해 완성된 엔진을 꼽아두고 최대 몇 주간 계속 엔진을 돌려 내구성을 평가하기도 한다”면서 “이러한 꼼꼼한 테스트를 통해 현재 불량이 거의 없는 상태이며,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AMG 엔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AMG는 SLK 55 AMG 차량에 탑재된 엔진을 끝으로 자연흡기 방식의 엔진을 단종시킨다. 대신 직분사, 터보차저 장착 등 다운사이징 기술을 통해 출력과 연비효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