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은 현재 시각으로 보면 아무 쓸모도 없는 연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쓸모없는 생각이 수십년 후 세상을 바꾸고 노벨상을 탄다." 미국 칼텍(Caltech·캘리포니아공대) 장-루 샤모(Jean-Lou Chameau·59) 총장의 말이다. 칼텍은 교수 300명에 학생이 학부·대학원을 합해 220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다. 하지만 1920년 설립 후 지금까지 29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꼽힌다.

지난 11일 광주과학기술원(GIST·지스트)을 방문한 샤모 총장이 김영준 지스트 총장,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과 만나 노벨상 수상 비결과 한국 과학의 미래에 대해 토론했다.

―올해 노벨 과학상이 모두 발표됐다. 기초과학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샤모 총장=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었던 플렉스너 박사는 1939년 나온 '쓸모없는 지식의 유용성'이란 논문에서 무선통신을 발명한 마르코니 사례를 들었다. 오늘날 휴대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마르코니의 발명도 수십년 전 맥스웰과 헤르츠의 전자기파(電磁氣波) 연구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전자기파 연구는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놀림받았다. 당장 응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기초과학을 소홀히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머리 맞댄 김영준 총장·오세정 원장 한미(韓美) 과학계 석학들은“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도전적인 연구에 투자하면 한국도 노벨상 수상자를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장-루 샤모 칼텍 총장, 김영준 지스트 총장,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왜 일본은 이미 16개의 노벨 과학상을 탔는데 한국은 수상자가 없나.

김영준 총장=일본이 서구 과학을 받아들인 지 100년이 넘는다. 우리나라 IBS와 비슷한 일본 이화학연구소만 해도 1917년 문을 열었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응용 기술에만 투자했을 뿐이다.

샤모=우리 대학 폴리처 교수는 노벨상 수락연설에서 "노벨상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연구에 기여한 30~40명 과학자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연구가 축적돼야 노벨상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도 시간이다.

오세정 원장=스위스는 우리보다 작은 나라지만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야마나카 교수는 독자적으로 연구를 한 지 6년 만에 올해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모방이 아니라 혁신적인 연구를 하면 단기간에도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칼텍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낸 비결은 무엇인가.

샤모=초대 총장이자 칼텍 첫 노벨상 수상자인 밀리컨 박사는 소수 정예의 연구 중심 대학을 추구했다. 덕분에 학문 간 융합으로 남들이 생각지 못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대학에 물리학자가 100명이나 있으면 그들끼리만 교류한다. 반면 우리 대학의 인공광합성 연구에는 생물학·화학·의학·공학 등 전 분야 연구자가 협력한다.

―미국과 한국 모두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다.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김영준=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것은 2가지다. 지속성과 고용안전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IBS와 같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지속해야 한다. 또 연구개발 투자는 지금까지 해온 인프라 중심이 아니라 인력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샤모=미국은 2차대전 이후 국립과학재단(NSF)·국립보건원(NIH)·항공우주국(NASA) 등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기관을 잇달아 세웠다. 이 기관들은 미국이 과학기술뿐 아니라 경제강국이 되는 데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정부 지도자는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기초과학 투자는 느는 데 우수 학생들이 외면하고 있지 않나.

오세정=기초과학이 돈벌이가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의대나 법대에 가는 젊은이가 많다. 앞으로 달라질 것이다. 요즘 젊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 즉, 많은 수입 외에 과학자의 자긍심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다. 60~70년대 해외 유학생들은 나라를 일으킨다는 자긍심이 있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샤모=과학자는 경제 위기 때 더 빛을 발하는 직업이다. 미국도 과학 분야를 지원하는 학생이 현상유지 수준이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변화가 왔다. 과학에 학생이 점점 더 많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전반적으로 높은 가운데 이공계 졸업생은 낮은 실업률을 기록한 것이 큰 영향을 줬다.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이 왜 좋은지 말한다면.

샤모=
지스트 학생들에게 강연하면서 두 달 전 화성에 착륙한 탐사로봇 영상을 보여줬다. 칼텍 제트추진연구소(JPL)가 개발한 로봇이다. 이 로봇을 보려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수백만명이 JPL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무엇보다 흥미롭기 때문이다. 과학은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탐험하게 해준다.

☞장-루 샤모 칼텍 총장은

프랑스인으로 파리공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도시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퍼듀대, 조지아공대 교수를 거쳐 2006년 칼텍 제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