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13일 도쿄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총회는 일본으로서는 의미가 깊은 행사였다. 3년에 한 번씩 미국 워싱턴 외의 지역에서 열리는 IMF-WB 총회는 올 10월에 원래 이집트 샤름 엘-쉐이크에서 개최되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집트가 정정 불안을 겪자 IMF는 개최지를 바꾸기로 했고, 일본이 손을 들었다. 대지진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지난해 6월 무렵이었다.

일본은 대지진 때 받은 국제적 원조에 보답하고, 스스로 건재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기회로 총회 개최를 자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국의 위기에도 다자주의에 공헌한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가본 도쿄는 대지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온하고 질서정연했다. 일본 최대 컨벤션센터인 도쿄국제포럼에서 개최된 총회는 외국 방문객들이 불편함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준비가 잘 돼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 경제 수뇌부가 불참한 것이다.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로 양국간 영유권 싸움이 심화되자 불참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중국의 4대 국유은행장도 오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등 중국과 일본 간 분위기는 경제외교면에서도 냉랭한 기운이 오갔다.

금융위기 이후 각종 국제회의에서 큰 목소리를 내던 중국의 불참으로 이번 회의에서는 이렇다할만한 빅 이슈는 없었다. 잔치상에 가장 중요한 손님이 빠지면서 일본이 머쓱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총회에서 IMF 재원 확충, 쿼터 개혁 등 주요 논의를 주도해왔다. 이번에 브릭스(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국가의 일원인 브라질이 선진국 양적완화의 부정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아젠다로 부상할 정도로 힘을 받지는 못했다.

이번 불참은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었겠지만 외교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행동일 뿐 아니라 중국의 일방주의를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했음에도 그에 걸맞지 않은 처신이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중일 관계가 냉각된 틈을 타 어부지리로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국에서 확산 중인 일본산 제품 불매 운동이 한국 제품의 판매 증가로 이어지며 6조원 이상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해석이다. 일방주의 성격이 강한 중국이 우리나라와 분쟁이 발생했을 때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금 일본을 향한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탈북자 강제송환, 이어도 관할권 주장, 동북공정 문제와 같이 우리와 중국 간에도 민감한 외교적 문제들이 다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IMF 총회에 앞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독도 문제로 외교 갈등을 빚으면서 통화스와프 연장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총회보다 이틀 앞서 중단하기로 매듭지으면서 이 문제가 국제 무대에서 조명되는 것을 막았다. 어떻게 보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것이기도 하고 일본과 소통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그나마 이런 소통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앞서 2010년엔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희토류 수출 금지 등 외교적 문제에 경제적 보복 조치로 대응한 바 있다. 중국의 경제, 외교 노선이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에서 '대국굴기(大國堀起 우뚝 일어섬)'로 바뀐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중국의 급성장 덕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고리를 잡게 됐지만 중국이 힘을 과용할 때를 대비해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 것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분쟁에서 우리가 배워야하는 교훈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