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이 기대 이상의 '3차 양적완화' 보따리를 풀었다. 금융 시장은 뜨겁게 환호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도 미국의 이번 결정이 세계 경제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엔 반길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이번 양적완화가 1,2차 양적완화 때와 마찬가지로 실물 경제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자산 시장의 가격만 높아지고 실물 경제엔 돈이 안도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 현상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경우 겉도는 유동성은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과 국제 원자재 시장에 몰릴 확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자금이 급격히 유입됐다가 빠질 가능성 ▲원화 값 상승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 ▲국제 원자재 값 추가 상승 등을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 세계경제 회복 촉진‥대외의존도 높은 韓 긍정적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 12~13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매달 400억달러 규모씩 모기지저당증권(MBS) 매입에 나서기로 했다. 제로(0)금리 기간을 2015년 중반까지로 연장하고, 장기채 매입 계획인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매달 450억달러)'도 연말까지로 늘리기로 하는 등 전방위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규모 면에선 이전 1,2차 양적완화 수준은 아니지만 무기한으로 매달 MBS를 일정량 매입한다는 게 3차 양적완화의 골자다. 최근 미국의 고용이 악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이같은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이끌어낸 배경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 뿐 아니라 초저금리 같은 정책이 연장된 것은 미국 경제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유럽중앙은행(ECB)의 무제한 국채 매입과 함께 세계 경제 회복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이번 연준의 결정은 반길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미국 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이 1.5%의 오름세를 보인 데 이어 14일 코스피 지수는 약 5개월만에 2000선을 탈환했다. 원화 환율은 5원 이상 급락하며 112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원화 가치 상승).

◆ 실물 견인 가능성은 미지수‥'부정적 스필오버' 가능성

하지만 금융시장의 열기가 나중에 실물 경제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일단 연준이 의도한 대로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대외 여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 역시 좋겠지만, 실물 경기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하면 유동성이 국제 상품 시장이나 신흥국에 흘러오는 부정적인 '스필오버이펙트(spillover effect)'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가 3차까지 올 수밖에 없던 것은 기존 1,2차 양적완화가 실물 경제에 불을 지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2010년 3월까지 국채와 모기지를 매입하는 1차 양적완화(1조7000억달러)를, 2010년 11월~지난해 6월까지는 미 국채를 매입하는 2차 양적완화(6000억달러)를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주식, 상품 시장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고용 개선, 소비 진작과 같은 실물 경제 부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 시장이 일단 환호하고 있지만 실물 경기 호전으로 이어질지는 이번에 역시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악순환이 3차 양적완화에서도 답습되면 우리나라와 같이 상대적인 고성장 국가는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태봉 국제금융센터 연구분석실장은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그 곳에서 소진되지 않으면 한국처럼 성과가 좋은 신흥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주식이나 채권 가격은 오르겠지만 돈이 급격하게 빠져나갈 가능성에 대해선 늘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 원화, 원자재값 상승 우려

물론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우리나라의 수출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국내로 유입돼 달러가 흔해질 경우 원화 가치가 상승, 오히려 수출에 역풍으로 작용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또 전 세계적으로는 원자재 값 상승을 촉발, 실물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은 이미 2차 양적완화로 부풀려진 지 오래다.

한은 관계자는 "실물 경제 영향은 두고 봐야겠지만 양적완화로 국제 자본의 이동이 많아지고 원자재 시장에 투기성 자본이 몰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서프라이즈'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잠시나마 봄날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고성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한때 두자릿수를 기록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7%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높다. 글로벌 경제에서 성장 동력의 주체가 실종됐단 얘기다.

이명활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제 회복에 속도가 붙으려면 세계 경제 회복을 견인하는 주체가 분명해야 하는데, 현재 유럽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고 중국은 이제 8%가 넘는 성장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 중국이 정권 교체를 마치더라도 정책 기조는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이 아닌 '안정 성장' 위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은, 10월 금리 내릴까

미 연준이 3차 양적완화를 내놓으면서, 지난 13일 시장 예상을 깨고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현행 연 3.0%로 동결했던 한은의 다음 행보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은이 이번에 추후 통화정책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쉬어갔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재정당국이 세금 감면 등 추경에 준하는 재정정책을 제시한 것과 비교되면서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화당국의 독립성은 보장받아야 마땅하지만,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식어가는데 예측불허한 금통위의 결정은 아쉬움이 많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 6월까지 금리 동결 기조를 지속할 때에는 '우리만 통화정책 기조를 달리 가져갈 수 없다'고 했고, 이번엔 선진국 중앙은행의 행보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