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을 구하느라 거액을 대출받은 부부들이 빚 갚는 데 허덕이느라 아기 낳기를 꺼리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 출산율(1.24명)의 근인(根因)에 '신혼집'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외동아들을 결혼시킨 이순이(가명·56)씨는 얼마 전 아들 내외의 신혼집에 처음 가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집이 작고 초라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여기서는 아기 낳고 기를 수가 없다"고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신혼집은 이씨의 아들이 6000만원을 대출받고, 모아놓은 돈 2000만원을 합쳐서 마련했다. 서울 신림동의 다세대주택으로 실평수가 33㎡(10평) 미만이다. 골목길 안쪽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마을버스로 20여분이 걸린다. 이씨의 아들은 "집 구하는 데 쓴 빚을 모두 갚고 더 번듯한 집을 구할 때까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시내에서 좀 먼 강북 쪽에 전세를 얻으려고 해도 1억5000만원이 훌쩍 넘어가더군요.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 싶었어요. 부산만 해도 8000만원이면 신혼부부가 살 수 있는 아파트 정도는 얻을 수 있는데…. 아들이 얼른 아기를 갖고 싶어했는데 현실이 불가능하게 만들었어요"(어머니 이순이씨).

올해 3월 결혼한 윤나래(가명·33)씨가 저축통장을 살피다 고개를 들어 자기 결혼식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5000만원을 대출해 서울 봉천동에 전셋집을 마련한 윤씨 부부는 매달 350만원씩 갚고 있다. 윤씨는 “당분간 아이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치솟은 신혼집 값은 결혼만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렵사리 돈을 마련해 집을 구한 신혼부부들도 집값 때문에 아기 갖기를 망설이고 있다. 취재팀이 만난 신혼부부 중에서는 "대출을 다 갚기 전에는 아기 낳을 생각이 없다", "더 넓은 집으로 옮기기 전에는 아기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값을 대주면서까지 결혼을 시킨 부모들의 마음은 더 무겁다. 지난해 아들을 결혼시킨 혼주 A씨는 "결혼시키고 나면 걱정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언제 손주 볼까 걱정"이라고 했다.

대학교수인 김완수(가명·60)씨는 아기를 갖지 않는 아들 부부 때문에 고민이다. 김씨의 아들 부부는 서울 강남에 보증금 2억원에 월세 60만원 신혼집을 얻었다. 김씨가 "월세는 힘들다"며 말렸지만 아들은 "회사 가까운 곳에 집을 얻는 게 편하다"며 강남을 고집했다. 아들은 "전세 구하기가 어려워 반(半)전세 형태로 출발하지만 곧 돈을 모아 전세로 옮기겠다"며 "보증금도 부모님들이 마련해주셨으니 빚도 없고, 금방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 부부는 3년째 집을 옮기지 못하고 같은 곳에 살고 있다. 아버지 김씨는 "(아들이) 막상 결혼하고 나니 매달 내는 월세 60만원이 부담이라고 하더라"면서 "얼른 손주 보고 싶지만 (아들 부부는) 아기 낳을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결혼한 김훈정(가명·30)씨는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해 결혼을 서둘렀다. 하지만 아기를 낳은 지금은 앞으로 둘째를 가질 생각이 없다. 김씨는 "급하게 마련한 살림에 아이 하나도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 김씨 부부가 사는 곳은 서울 신당동의 56㎡(17평) 연립주택. 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김씨 부부는 6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올 초 아기가 태어나자 예방접종비, 산후 조리 비용만으로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원래 김씨 부부는 아기를 낳고 맞벌이를 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씩 원금을 갚자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김씨는 아기를 돌보기 위해 맞벌이를 미뤘다. 남편 혼자 버는 200만원으로 대출이자 40만원을 갚고, 육아비용으로 100만원쯤 들어가니 생활이 빠듯했다. 김씨는 "돈을 모아서 보금자리주택에 들어가는 게 꿈"이라며 "둘째는 낳고 싶지만 현재 상태로는 하나 키우는 것도 버겁다"고 했다. 김씨 부부는 벌써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