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무실 등 대형 빌딩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국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약 25%에 이른다. 에너지 절감이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빌딩 에너지 관리시스템(BEMS)'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파이크리서치는 BEMS 시장이 매년 14%씩 성장해 2020년에는 60억달러(약 6조8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 사용량 4분의 1로 줄인 빌딩

프랑스 파리에서 4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주택가로 이뤄진 작은 도시 뤼에유말메종이 나타난다. 전 세계 BEMS 시장을 선도하는 슈나이더일렉트릭 본사가 있는 곳이다. '하이브(Hiv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본사 건물은 작년 에너지경영시스템(EMS) 분야 국제표준 'ISO 50001'을 세계 최초로 획득하면서 BEMS 업계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하이브를 방문한 지난달 중순 파리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기온이 섭씨 30도 중반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건물 외부가 유리로 된 하이브를 보면서 건물 안이 무척 더울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쾌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어컨을 과도하게 켠 것이 아닌지 의심하자 슈나이더일렉트릭의 베르트랑 구아리노(Guarinos) 부장은 "이것이 에너지 관리 시스템의 마술"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브는 건물 전체에 설치된 186개의 위치센서를 통해 에너지 사용을 자동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전 직원이 들고 다니는 출입증을 천장과 벽에 설치된 위치센서들이 감지해 조명을 켜고 냉난방 온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근무하는 직원 숫자에 맞춰서 적정량의 산소도 공급돼 연중 이산화탄소 수치가 일정하게 관리된다. 건물 전체에 설치된 2424개의 전동 블라인드는 온도와 빛의 양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고 조명도 함께 조절된다.

하이브는 2008년 에너지 사용량이 제곱미터(m²)당 320kWh였다. 2009년에는 150kWh로 줄었고, 이후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지난해에는 m²당 78kWh까지 사용량이 감소했다. 에릭 리제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사장은 "하이브는 2008년보다 에너지 소비량을 4분의 1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슈나이더일렉트릭 본사 건물 하이브(Hive). 지난해 세계 최초로 에너지경영시스템(EMS) 분야 국제표준(ISO 50001)을 획득했다.

◇국내 기업도 에너지 관리사업에 눈 떠

글로벌 BEMS 시장은 슈나이더일렉트릭을 비롯해 IBM·시스코·지멘스 등 해외 기업들이 이끌고 있다. 최근 국내 기업들도 앞선 IT 기술을 바탕으로 BEMS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결합한 BEMS를 선보였다. 클라우드컴퓨팅 등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다수 빌딩을 하나의 중앙관리센터가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다. 빌딩 하나하나를 따로 관리하는 방식보다 효율적이고, 축적할 수 있는 에너지 관련 데이터도 많을 수밖에 없다. SK텔레콤은 지난해 7월부터 이 기술을 서울 을지로 T타워와 SK남산 그린빌딩 등에 적용해 에너지 사용량을 10~15% 절감했다.

KT는 2015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20% 절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0년 BEMS 관련 기술을 개발해 정부의 녹색기술 인증을 받았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의 스마트그린센터가 여러 빌딩의 에너지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KT는 BEMS를 통해 자체적으로 연간 300억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GS칼텍스 대전연구소, 서울 강남역 부띠끄 모나코 빌딩, 구로 이마트 등 여러 건물에 BEMS를 공급하고 있다. KT는 전력 피크시간대에 빌딩에 따라 에너지 소비를 줄여 정부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포스코IC는 올 4월 산업용으로 특화된 에너지관리시스템을 선보였다. 대우정보시스템·코오롱베니트·삼성전자 등도 BEMS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집 에너지 관리'까지 나서

일본은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빌딩에 BEMS를 설치한 에너지 절약 강국이다. 지난해 대지진으로 극심한 전력난을 겪었던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가정용 에너지 관리시스템(HEMS·Home Energy Management System)'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도시바는 에어컨과 조명 등을 제어할 수 있는 HEMS를 10만엔(약 144만원)에 공급하고 있다. 미사와홈과 미쓰이부동산 등 다른 기업들도 HEMS 기기를 준비하고 있다.

김경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이 다른 나라보다 미래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한발 앞서 변화하고 있다"며 "전력망·에너지 수급 구조가 흡사한 한국 입장에서는 전기절약과 미래 성장 산업을 위해 일본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EMS(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대형 빌딩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절감하는 관리시스템. 건물에 설치된 각종 센서를 통해 온도·습도·빛의 양 등을 계속해서 측정하고, 현 상태에 가장 적절한 수준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