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부진을 겪던 르노삼성이 전 직원의 15%가량인 800명을 희망퇴직시키기로 결정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신차의 잇따른 실패 ▲높은 원가 구조로 인한 수익성 악화 ▲르노닛산 그룹의 글로벌 생산전략 부재 등을 꼽는다. 1995년 삼성자동차로 출범한 르노삼성은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2000년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르노에 매각됐다. 르노삼성은 지난해부터 판매가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했고, 올 상반기에는 국내·외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8% 감소한 8만3062대밖에 차를 팔지 못할 만큼 부진한 상황이다. 6월에는 쌍용차에까지 밀리며 국내 완성차 업체 중 꼴찌를 하는 수모도 겪었다.

◆ “잘 팔리는 신차가 없다”

르노삼성 로고

전문가들은 르노삼성의 실적이 안 좋은 첫 번째 이유로 신차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을 꼽았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동차 회사는 신차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데 르노삼성은 그동안 이렇다 할 신차가 없었다”면서 “닛산 주도로 개발된 과거 신차는 경쟁력이 있었지만, 르노 주도로 개발된 최근의 신차는 국내 브랜드의 차보다 나은 차라는 인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르노삼성은 차종이 겨우 네 개로 적은데다, 디자인이 나빠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프랑스에서 대중 차 역할을 하는 르노의 디자인으로는 눈 높은 국내 소비자를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12년형 SM7, 2012년형 SM5, 2013년형 QM5, 2013년형 SM3

르노삼성은 지난해 9월 최고급 세단인 SM7을 출시했지만, 오히려 구형 모델보다도 판매가 저조한 상황이다. SM7은 8월까지 지난해보다 62.2% 줄어든 3966대가 팔렸다. 구형 모델을 팔았던 지난해 8월까지 르노삼성은 1만486대의 SM7을 판매했다.

이어 올 초 출시한 주력 제품 SM5의 개선 모델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연비 향상 기술을 적용해 상품성을 높였지만, 판매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SM5 역시 8월까지 지난해보다 39% 줄어든 2만667대밖에 팔지 못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QM5는 월평균 400여대가 팔릴 만큼 존재감이 없다.

르노삼성은 최근 신형 SM3를 출시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특히 신형 SM3에 동급 최고의 연비를 구현한 것에 르노삼성은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SM3가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 준중형 세단이라 실적 개선에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 김필수 교수는 “SM3 역시 이전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아 성공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앞으로 나올 SM5는 디자인을 더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기술 사용 댓가로 르노삼성에서 5000억원 빼간 르노 그룹

르노삼성의 사정이 어려워진 또 하나의 이유는 높은 원가 구조다. 먼저 르노삼성은 르노와 닛산의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기술료를 지급하고 있다. 르노 그룹에 인수된 이후 르노삼성이 지급한 기술료는 4944억원. 이는 르노가 르노삼성 인수에 쓴 현금 2090억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르노삼성은 또 엔진과 변속기 등 고가의 핵심 부품 중 상당수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엔화 가치가 높을 수록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를 안고 있다. 르노삼성은 국산화율을 80%까지 높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핵심 부품의 높은 원가 문제는 해소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여기에 판매량이 급감하며 규모의 경제도 실현이 안 돼 원가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르노삼성은 2010년 3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215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김필수 교수는 “르노 그룹이 최근 가장 잘한 일이 르노삼성 인수였다고 할 만큼 르노는 투자한 금액보다 가져간 금액이 많다”면서 “르노가 국내에서 번 돈을 가져가기보다는 한국에 과감하게 재투자를 해야 르노삼성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 르노 그룹의 글로벌 생산전략도 실패

전문가들은 또 르노삼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르노 그룹의 전략 부재도 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먼저 르노 그룹이 르노삼성의 연구개발 부문을 육성하지 않고 르노와 닛산의 기존 것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 문제로 꼽혔다. 김기찬 교수는 “기본적으로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고, 제품이 경쟁력이 없다 보니 판매도 부진해 투자할 자금이 더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카를로스 곤 회장이 최근 르노삼성 부산공장에 1800억원을 투자해 닛산의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생산을 맡긴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김필수 교수는 “위탁생산을 맡아 생산기지 노릇을 하는 것은 단기적인 처방밖에 되질 않는다”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내수 판매를 살리는 일이고, 그러려면 대대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르노가 간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르노 그룹이 국내에서 현지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르노 또는 닛산 출신의 외국인 임원과 한국인 임직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답답한 경우가 많다”면서 “식민지 시대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김필수 교수도 “르노가 현지화 노력을 별로 하질 않아 르노삼성 조직 내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직원이 많다”면서 “외국기업의 이미지를 최대한 탈피해 현지화를 해야만 국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교수는 “가장 시급한 것은 뛰어난 신차를 내놔 성공을 하는 것”이라면서 “신제품을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고, 이를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만 르노삼성이 회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교수는 “한 번 떠난 고객이 돌아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서 “틈새 차종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기존 차종도 완전히 바꿔야 르노삼성이 3~4년 안에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