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에서 제네시스 V6 3.8엔진 풀옵션 모델을 6470만원에 구입한 김광수(가명)씨는 지난 주말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친구 A씨와 전화를 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A씨가 현지에서 2013년형 제네시스 3.8엔진 모델을 3만2000달러(약 3618만원)에 샀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

현대자동차의 2013년형 제네시스

똑같은 차를 2800만원이나 비싸게 구입한 사실을 안 김씨는 곧바로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으나 소용없었다. 김씨는 영업사원에게서 “억울하면 미국에 가서 차를 사오시지 그랬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국산 고급자동차의 미국 판매가격이 한국보다 수천만원 싼 것으로 나타나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김씨의 친구 A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달 미국 콜로라도주의 대학에 1년간 교환교수로 온 직후 제네시스를 구입했다”면서 “이곳 딜러가 처음에 3만4000달러를 제시했으나 10여분간 흥정을 하자 3만2000달러에 깎아줬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에서 2013년 제네시스 V6 3.8엔진 모델의 가격은 옵션(선택품목)에 따라 5240만~6470만원이다. A교수의 차량 구매 가격인 3만2000달러를 23일 환율(1달러=1130.5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3618만원이다. 옵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국내 소비자 가격이 1622만원에서 최대 2852만원까지 비싸다. A교수는 “미국에서 1년간 타다가 한국에 가져와서 중고차로 팔아도 남는 장사인 것 같아 구입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에쿠스

제네시스뿐만 아니다. 국산 최고급 차종인 에쿠스는 미국 판매가격이 한국보다 최대 4300만원이나 저렴하다.

에쿠스(V8 5.0엔진 기준)를 한국에서 사려면 1억991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반면 미국에서 구입하면 5만9250달러(6698만2125원·시그니처 모델)에서 6만6250달러(7489만5625원·얼티미트 모델)면 된다. 한국 소비자에게 파는 가격보다 3501만4375원에서 최대 4292만7875원까지 저렴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2012년형 그랜저(미국명 아제라)

2000년대 미국에 1~2년 다녀오는 연수자들 사이에 '사오면 무조건 남는 차'로 통했던 그랜저(미국명 아제라)도 여전히 미국에서 구입하면 싸다.

V6 3.3 GDI엔진을 탑재한 2012년형 그랜저를 국내에서 사면 4348만원이 든다. 반면 이 차를 미국에서 사면 3만2000달러(3617만6000원)로 730만4000원 저렴하다.

이들 차종은 한국과 미국의 큰 가격 차에도 불구, 기본 성능과 편의장치, 선택품목(옵션) 차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와 소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은 주차공간이 넓어 수출용 차량은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접히지 않는다는 점 정도를 제외하면 내수와 수출용 차량은 세부 편의장치까지 거의 동일하다.

자동차 회사가 동일 차종을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싸게 판매하는 이유는 양국 자동차 시장의 경쟁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은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75%(올 1~7월 기준)에 이르는 독과점 시장이어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은 자동차 업체들 사이의 판매경쟁이 치열하고 현대·기아차의 점유율과 브랜드 가치가 낮은 편이므로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나광식 한국소비자원 가격조사팀장은 "현대차가 똑같은 차를 한국 소비자에게만 비싸게 판매하는 것은 몇해 전부터 현대차가 내세워 온 '제값 받기' 전략이 사실상 한국에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현대차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자동차에 붙는 세금이 많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런 이유로 실제 한국과 미국의 가격차이보다 더 커 보이는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