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가들 사이에서 위험자산으로 평가받았던 한국 국채가 안전자산 대접을 받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이 출렁이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 국채를 팔아 자금을 회수해 가면서 한국 국채 금리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상승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돼 왔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들어 한국 국채금리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금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커플링(coupling) 현상이 강해지고 있고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채금리나 원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 韓·美 국채 금리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 3년물 국고채 금리와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4~6월 기간 동안 두 금리의 상관계수는 0.95이었다. 지난해 0.71이었던 것과 비교해 커플링 현상이 더 강화됐다. 두 금리가 똑같이 움직일수록 상관계수는 1에 가까워지고, 역(逆)상관관계가 크면 -1에 가깝다. 0에 근접할수록 상관관계가 작다는 것을 뜻한다.

한ㆍ미 국채금리의 상관계수는 2007년 -0.36이었다. 이 때만 해도 미국 국채 금리가 떨어질 때 한국 국채 금리는 오르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일반적이었다.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살 때 한국 국고채를 팔았다는 의미다. 2008년 상반기에는 미국 주요 은행들이 신용경색을 보이면서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한 탓에 상관계수는 0.17에 그쳤고, 2008년 하반기 리먼 사태 직후에는 0.06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완화되면서 세계적인 주가 상승 움직임과 함께 미국 국채 금리도 상승세다(국채가격 하락). 이번 달 들어 미국 3년물과 10년물은 각각 89bp, 20bp씩 뛰었다.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한국 국고채 금리도 미국 국채와의 ‘동조화’ 현상으로 3년물 국고채 금리와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각각 7bp, 2bp씩 올랐다. 한국은행의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예상되는 와중에도 미국 국채와 비슷하게 상승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 한국 국채는 이제 안전자산‥주식 팔면 채권 산다

한국 국채가 안전자산이라고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외국인 주식투자와 채권투자의 상관관계다. 올 들어 외국인 투자가들의 주식투자와 채권투자의 상관계수는 -0.51까지 떨어졌다. 주식을 팔아도 채권은 투자 포트폴리오에 남겨둔다는 의미다.

그동안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주식과 채권 모두 위험자산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주로 비슷한 시기에 함께 사고팔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8년 상반기 이 상관계수는 0.93에 달했고 2008년 하반기에도 0.87로 높은 수준이었다.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을 노리기 위해 채권을 팔고 나가는 투자 방식도 크게 줄었다. 장기 보유 목적으로 한국 국채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늘어난 것이다. 원달러 환율과 외국인 채권 순매수의 상관계수는 2008년 하반기 -0.74까지 내려앉았지만 올 들어 0.5까지 올라섰다.

만기 10년 이상 국고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 잔액은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말에는 720억원에 그쳤지만 지난 5월말 3420억원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1조3090억원 순매도였지만 2010년에는 139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특히 대표적인 장기 투자자로 분류되는 해외 중앙은행들이 한국 국채를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외국인 투자가의 한국 국채투자 중 중앙은행의 투자 비중은 2007년 4.7%에 그쳤으나 2008년 12.1%, 2009년 21.4%, 2010년 28%에 이어 지난해에는 40.4%까지 뛰어올랐다.

그래픽=박종규

◆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운 안전자산 ‥ 한국 국채로 몰려

이처럼 한국 국채가 안전자산 대접을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탈이 탄탄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32.9%로 안정돼 있다. 미국(106%) 영국(88.4%) 독일(78.9%) 등 선진국에 비해서 크게 양호하다.

채권을 주로 사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영향도 있다. 지금은 안전자산 실종(Safe Asset Squeeze) 상태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유럽 재정위기의 격랑 속에서 무디스ㆍS&P 등 주요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선진국의 국가 신용도를 대거 낮췄다. 23개 주요 선진국 중 신용등급 AAA를 보유한 국가의 비중은 2007년 68%에서 올해 52%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 원화가치가 안정세를 보이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삼성증권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원화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주요 23개 통화 중 변동폭이 가장 컸으나 올해는 변동폭이 0.46%에 불과해 5번째로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환율 변동으로 인한 리스크가 그만큼 작아졌다는 얘기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국채에 대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며 “글로벌 안전자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적합한 대체 투자대상으로 자리매김 해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