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부실채권 처리에 비상이 걸렸다.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권에 올 연말까지 부실채권 비율(총 대출에서 고정 이하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평균 1.3%로 맞추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의 평균 목표치인 1.5% 보다 강화된 목표치다. 은행권 부실채권 중 4조원 어치가 하반기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유로존 위기 등 세계 경기 침체 장기화로 건설 조선 해운 철강 등 경기 민감업종 중심으로 부실이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은행들의 선제적인 건전성 관리를 위해 부실채권 정리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의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부실채권을 정리하려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연말로 갈수록 표면으로 드러나는 부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권으로 부실이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하반기 정리할 은행 부실채권 15조원‥4조원 가량 시장에 나올 듯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은행권 전체 부실채권 비율은 1.49%다. 총 대출 규모는 1403억원이며 이중 부실채권잔액은 20조8000억원이다. 총 대출잔액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부실채권 비율을 1.3%로 낮추려면 2조7000억원의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여기에 지난해 분기 평균 신규 부실채권 발생 규모가 6조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권이 하반기에 정리해야 하는 부실채권 규모는 15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특히 하반기 경기가 지난해 보다 더 나빠지고 있어 그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은 충당금을 쌓거나 매각하는 방법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한다. 2010년 이후 평균적으로 부실채권의 30%는 충당금을 적립해 해결하고 25% 가량은 시장에 매각해 왔다. 나머지 부실채권은 담보를 처분해 회수하거나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린다. 은행들은 2009년 이후 매년 27조~29조원의 부실채권을 충당금 적립과 매각 등의 방법으로 정리해 왔다.

은행들이 하반기에도 부실채권의 25% 가량을 매각한다고 가정하면 시장에 나오는 물량은 대략 4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하반기(4조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 상반기 보다 1조원 이상 많은 규모다.

◆ 우리 국민 산업 기업 등 부실채권 비율 1.3% 초과

은행별로 보면 6월말 기준 부실채권 비율이 1.3%를 초과하는 주요 은행은 국민·우리·산업·기업은행 등이다. 우리은행이 1.77%로 가장 높고 국민은행(1.64%), 산업은행(1.64%), 기업은행(1.48%) 순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국민은행이 3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올 상반기 3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각한 국민은행은 하반기에도 3000억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말할 수 없지만 올해 매각하는 부실채권 규모는 작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상반기에 7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판 데 이어 하반기에도 4000억원 가량의 부실채권을 매각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매각 규모(7000억원) 보다 57% 급증한 수준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올 하반기는 작년보다 경기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부실화되는 한계기업이 더 많을 것 같다"고 밝혔다.

◆ 부실채권에 충당금까지…은행 수익성 '빨간불'

은행들의 부실채권 정리 규모가 늘어나면 이익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충당금 적립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심규선 한화증권##애널리스트는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부실 대출을 처리해 부실채권 비율을 맞추면 수익성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KB·우리·신한 등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전날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위기 대응 여력을 확충하기 위해 연말까지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하겠다고 합의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부실채권 매각 가격도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채권은 대부분 땅·아파트·상가 등 부동산을 담보로 한 채권이어서 매각가격은 부동산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담보부채권은 부동산 경기가 좋아야 참여자가 늘고 가격 경쟁도 생기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분위기가 안 좋을 것 같다"며 "제값을 못 받아도 이들 부실채권을 정상화하기는 더 어렵기 때문에 빨리 정리하려는 은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