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현대건설 태양섭(60) 부장은 강원도 속초에서 함경남도 함흥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을 위해 북한에 파견된 한국 직원 중에서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되는 특수 용접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자였다.
태 부장은 서울 한양공고, 인천기능대학을 졸업해 197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후 용접 분야에서만 35년째 일해 왔다. 20년간 현대건설 인재개발원에서 용접 교육을 전담했고, 1997년부터 원자력 용접 분야를 맡아 영광 5·6호기, 신고리 1~4호기, 신울진 1·2호기 등 8기의 원전 건설 공사에 참여했다.
북한 경수로사업 때는 2003년까지 2년간 현지에 머물며 북한 측이 선발해온 우즈베키스탄 용접사 50명을 가르쳤다. 우즈벡 용접사들은 자국에서 10~20년씩 용접을 한 경력자들. 하지만 한국 기술자들에 비하면 초보 수준에 불과했다. 간단한 영어도 통하지 않아 태 부장은 일일이 용접 시범을 하고 동그라미·세모·가위표를 그려 평가를 해가면서 이들을 교육했다.
"북한에 간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무섭기도 했지만 '용접 기술이 있으니 이런 곳도 가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4개월에 보름씩 한국으로 휴가를 나왔는데 해외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느낌이었죠."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철판이나 배관의 두께는 최대 100㎜가 넘는 등 일반 용접(평균 6㎜ 안팎)보다 훨씬 두껍다. 또 원자로 등 중요 설비가 들어가는 곳마다 용접 자격을 따로 정할 정도로 요건도 까다롭다. 설비 내 배관에 0.001㎜의 보이지 않는 틈도 대형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용접 부위 온도와 작업 속도도 용접 품질을 결정한다. 쇠파이프나 철판을 용접할 때 가열 온도가 규정보다 1~2도만 높거나 낮아도 철이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지거나 용접이 되지 않는다. 25㎜ 두께의 6m짜리 파이프 두 개를 이어붙이는 데 한 시간 이상 꼬박 걸릴 정도.
"원전에서 용접 작업을 하려면 최소 3개월 안팎의 교육을 받아야 해요. 자격을 얻어도 원전 용접사로서 제 역할을 하기까지 1~2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하죠. 용접부 온도 1~2도를 조절하면서 품질을 높이는 법을 익히는 게 숙련된 용접사의 비결입니다."
태 부장은 원전 공사 현장의 용접사에게 원자력 용접 기술을 가르치고 이들이 용접 자격을 충족하는지 검사·감독하는 업무를 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협력업체 직원들로 지금까지 1500여명의 용접사를 배출했다. 2017~2018년 준공 예정인 신울진 1·2호기 공사 현장에서도 800명 이상의 용접사가 새로 나온다.
"원자력 용접사를 만드는 산파 역할이 제 몫이에요. 기술을 가르쳐 함께 원전을 짓는 거죠. 교육을 마치고 제 몫을 하는 용접사들이 이젠 다들 자식 같아요."
태 부장은 정년(58세)이 지났지만 용접 기술을 인정받아 아직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원전 공사 현장에는 자신이 가르친 후배 직원이 태 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들은 용접이 궂은 일이라고 하지만 그 기술 하나를 꾸준하게 익혀 왔던 게 이 나이에도 현장에 있는 비결 아니겠어요? 이제 우리가 원전을 수출하는 시대가 온 만큼 해외에서 용접 기술을 뽐낼 후배를 키우고 물러나는 게 마지막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