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론 디자이너 석정혜 코오롱 FnC 이사.

최근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패션브랜드를 꼽으라면 '쿠론'을 빼놓을 수 없다. 샤넬, 루이비통을 '칭송'하던 여성들의 손에 어느덧 쿠론 가방이 들려 있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백화점에 들여놨다 하면 '매진'이고, 배우가 들었다 하면 '완판(모두 팔리는 것)'이다.

계속되는 경기 불황에 해외 유명 브랜드마저도 매출이 떨어지는 터라 '작년만큼만 해도 다행'이라고 외치는 패션 업계에서 이 브랜드의 매출 상승세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지난해 매출 120억원이었던 이 브랜드가 올 상반기에만 17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예상액은 350억원. 현재 국내 매장만 37개에 유럽과 미국에도 일부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정식으로 선보인 지 만 3년 만에 거둔 실적이다. 그야말로 패션 업계 '돌풍'이다. 무엇보다 쿠론의 이러한 '질주'가 눈길을 끄는 건, 국내 디자이너가 제작한 국내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해외 고가 브랜드가 장학한 국내 핸드백 시장에서 쿠론의 행보는 업계의 최고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쿠론을 지금 이 자리에 올린 석정혜 코오롱 FnC 이사에게 그 비법을 물었다.

쿠론 비주얼.

◇현장에서 배운 노하우…중간 마진 줄여 가격 대비 최상의 품질로 승부한다.
사실 석정혜 이사는 이미 몇년 전부터 패션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2009년 정식 매장을 차리기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인기 디자이너'로 유명세를 날린 바 있다. 20년 전 국내 패션기업 한섬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다 1995년 회사를 나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가방 사업을 해왔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가방을 만들고 싶어서 손수 제작해 메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이 다가와서는 "그 가방이 어디 제품이냐. 구할 수 있느냐"라고 그녀에게 물은 것. 알고 보니 그 여성은 재벌가의 부인이었고, 상류층 사이에 그녀의 가방은 '특별한 제작품'이라며 소문이 났다. 그 뒤 주문량이 점점 많아지자 그녀는 '이제 내 디자인을 팔아봐야겠다'는 자신감이 들었고, 블로그를 통해 제품을 주문받아 판매하게 됐다. 당시 패션 업계에서 '석정혜 디자이너 가방' 하나는 있어야 '패셔니스타(유행을 주도해가는 사람)'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마니아층에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2009년 4월 서울 청담동에 작은 매장을 차린 뒤 '쿠론'이라는 브랜드로 가방을 만들어 팔았다. 쿠론은 프랑스 어로 '왕관'이라는 뜻. 예쁘게 들리고 자신 있는 느낌이어서 쿠론이라고 택했다.

첫해만 매출 17억원. 작은 매장에서 올린 것치고는 꽤나 주목할 만한 수치였다. 청담동에서 옷 잘입는다고 소문난 여성들 손엔 어김없이 쿠론 백이 들려 있었다. 그러자 국내 대기업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론의 가능성을 높게 본 코오롱FnC가 매장 문을 연 지 1년 만에 '인수'를 제안했고, 세계가 인정하는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던 석정혜 이사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쿠론의 장점은 뛰어난 디자인 감각에, 가격 대비 품질이 상당하다는 것. 해외 유명 브랜드인 셀린느, 에르메스 등에 가죽을 납품하는 이탈리아 고급 가죽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탈리아에서 가죽을 직접 공수하고 있다. 한국엔 4958m²(약 1500평) 규모의 자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이탈리아 현지 공장에서도 생산하고 있다. 코오롱에 인수되니, 자본력이 충분해 공장도 보유하고, 가죽도 다량 사둘 수 있는 건 큰 장점이었다.

석 이사는 "20년 가까이 가방 제조 사업을 하면서 발로 뛰던 노하우들이 모여 현재 같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며 "공장 사장님들과 맞부딪히며 직접 일을 배웠더니, 어떻게 하면 중간 마진 없이 최상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소가죽은 여름에 사면 싸게 살 수 있거든요. 우리는 가죽을 깨끗하게 보관할 수 있는 냉동창고 형식의 공장도 보유하고 있어, 리오더(재주문)가 들어올 경구 재빨리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죠. 중간 유통과정도 없고 원지(염색하지 않은 소가죽) 보유량도 상당해 다른 회사보다 최소 3주일 이상 빠르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요."

쿠론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스테파니 블루.

◇가격과 타협하지 말 것. 그들이 사고 싶고, 기꺼이 돈을 낼 수 있는 가방을 만들어라.
그녀는 가방을 만들 때 가격을 책정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방을 만들어 놓은 다음 가격을 책정한다고 했다. 일단 원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 놓은 뒤 제작에 소요된 비용 등을 계산해 적정한 소비자가격을 지정한다는 것이다. "만약 가격을 정해놓고 가방을 만들게 되면 소비자들이 지불할 만한 가격선과 적당히 타협해 적당한 가방을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팔리긴 하겠지만 '좋은 브랜드'로 성장하긴 어려워요."

그녀의 말은 에르메스가 보여준 가격 책정법과 유사했다. 파트릭 토마 에르메스 前 회장은 에르메스의 철학에 대해 "가격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라며 가격에 맞춰 가방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가방을 만들어놓고 가격을 매기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고 쿠론 가방이 에르메스 버킨 백 처럼 1000만원을 호가하는 건 아니다. 인기 가방인 '스테파니'의 경우 60만원대다. 특수 가죽을 사용하거나 주문 제작하는 경우 600만원대가 넘지만, 해외 유명 브랜드 가방이 200만~1000만원임을 고려할 때 전혀 비싸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가방은 그만큼 가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진을 챙기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소비자들이 그 정도 돈을 지불하고 사도 후회 없는 지를 판단해야죠."

스테파니 가방의 경우 60만원대지만 최소 80만원 정도의 가치를 한다고 했다. 가방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건 중간 마진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부에선 제가 신데렐라처럼 데뷔했다고 생각하지만 20년 동안 자존심도 많이 다쳐보고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시장 시스템을 온몸으로 익힌 사람"이라며 "가죽 구매부터 제작, 공정까지 다 알고 있어 불필요한 손실을 줄였고, 결국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는 '매출'이 말해주고 있다.

다양한 색상의 스테파니 가방. 좋은 가죽에 기능성 갖춘 제품이 특징이다.

◇명품이란 말 촌스러워…'좋은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 본격 공략
쿠론이 패션계에서 더욱 주목받는 건 지난 7월 11일 인천공항 면세점에 국내 브랜드로는 이례적으로 단독 매장을 오픈했기 때문. 외국인들이 전체 매출의 50% 이상 되고 루이비통·에르메스 등 해외 고가 브랜드가 주로 매장을 차지하는 그곳에서 샤넬 맞은 편에 등장한 쿠론의 행보에 해외 유명 브랜드도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방돔 럭셔리(Vendme Luxury)' 쇼에 한국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참가해 20만 달러어치 수주를 따냈다. 유명 럭셔리 브랜드 바이어들만 오는 행사여서 보통 서너 차례 참가해야 수주가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까다로운 행사에서 첫 회 참가 만에 수주 실적을 올린 것이다. "전 솔직한 가방을 만들고 싶어요. 괜히 허영에만 편승하는 그런 제품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쿠론 가방은 디자인에서부터 색감, 실용성에 트렌드를 주도하는 능력까지 모든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스타일과 품질은 명품 급인데, 시즌 상품만 나오는게 아니라 마치 H&M 같은 SPA(제작 유통을 한 곳에서 하는 것)처럼 트렌드에 맞는 '반응 상품(당시 스타일에 맞추는 상품)'도 적절히 생산된다.

그녀는 '조직원들의 힘'이라며 공을 돌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이너 실장과 MD(상품기획자) 모두 핸드백 디자이너 경력이 전무하다. 디자이너 실장은 골프용품을 오래 다룬 전문가고, MD는 의류 MD 출신이다. "다들 잡화 경험도 없는 친구를 데려와 어떻게 일하겠느냐고 걱정하더라고요. 하지만 오히려 그게 약이 됐어요. 실장은 골프용품을 다뤄봤기에 '기능' 면에서 탁월했고, MD는 기획력이 대단했어요. 의류는 사시사철 제품에 간절기 상품까지 기획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녀는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CEO의 리더십도 겸하고 있다. 잘못하는 후배를 질책하는 것보다 장점을 키워 장점을 최대화 하라는 것이다. "전 천성을 믿어요. 단점은 쉽게 고쳐지지 않지만, 장점을 칭찬하면 단점을 장점으로 가릴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팀원들의 사기도 더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석 이사는 그녀의 성공에 대해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외제 명품백'에 목메던 한국 소비자들도 개성을 중시하게 됐고, '짝퉁 명품'을 들 바엔 품질 좋은 고유 브랜드를 들자는 시선이 팽배한다는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어제 해외에서 나온 상품에 대해 오늘 소비자들은 다 알고 있어요. 브랜드만 따지던 소비자들도 포장이 아닌 내용에 주목하기 시작했죠. 품질을 따지고 나만의 스타일을 따지는 시대가 왔습니다."

석 이사는 "누구나 들고 싶어하는 가방을 원하지 아무나 드는 가방을 원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길을 가다 사람을 멈춰 서게 만드는 그런 가방, 자신이 처음 했던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가방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전 명품이란 말이 촌스럽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자신 없는 사람들이 괜히 비싼 가방에 자신의 가치를 편승시키려 하죠.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가 당당하다면 자신이 택한 가방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