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를 만드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잇달아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음식점들에게 주는 혜택도 우리에게는 주지 않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살린다는게 이런 겁니까?"
주문도시락 생산과 단체급식 사업을 하는 식품업체 서래의 김호균 사장은 "대부분의 중소 도시락·급식 관련 업체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들의 시장 잠식으로 고사(枯死) 직전까지 몰렸다"며 이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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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시락식품공업조합 이사장이기도 한 김 사장은 "2000년대 초반 150개가 넘던 도시락 제조업체가 현재 41개로 10년새 30% 이하로 줄어들었다"면서 "급식업도 삼성과 LG(003550), 현대, 신세계(004170)등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중소기업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먹을거리 중소기업들이 죽어가는 데도 세제혜택 등 정부의 지원은 같은 음식점(외식업)에만 집중됐다"며 "정부가 말하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공염불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 먹을거리 중기들 "같은 음식업종인데 왜 우리만 세금공제 소외?"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최근 식품업 관련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여 외식업과 동등한 수준의 세금감면 혜택을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면류와 장류, 제과제빵업, 가공육류, 어묵, 도시락 등 주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기업조합의 대표들이 대부분 참석한 자리였다.
이들 업체 대표은 정부에 '의제매입세액 공제제도'의 공제율을 음식점과 중소기업들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제매입세액 공제란 유통과정에서 거래되는 면세품목에 대해 일정 세율을 적용해 부가가치세 일부를 공제해 주는 제도를 뜻한다.
현재 음식점업의 경우 개인음식점은 7.41%, 법인음식점은 5.66%, 유흥업소는 3.85%씩 부가세 일부를 감면받고 있다. 반면 식품 관련 중소기업들은 1.96% 감면에 불과하다.
업체 대표들은 음식점과 유흥업소 업주들의 수가 수십만명이지만 먹을거리 중소기업은 7000여개에 불과해 정부가 기업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지원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사장은 "음식점 업주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정치권에 압력을 넣는 등 조직적인 활동을 벌여왔다"며 "이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2000년 공제율에 차이를 두면서 지금껏 격차가 계속 벌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 OEM 생산·PB제품 문제도 제기…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
먹을거리 관련 중소기업들은 또 현재의 OEM(주문자 생산 방식) 생산 방식으로 인해 업체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OEM이란 대기업 등의 주문자가 제조업체에 상품 생산을 맡기고, 이를 납품받아 자사의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생산 방식을 뜻한다.
한국육가공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강상훈 동양종합식품 사장은 현행 OEM 생산으로 많은 식품가공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도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대기업들이 먹을거리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자금력과 기술 개발 등에서 열악한 많은 중소기업들이 결국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며 "대기업들의 비용 절감으로 하청을 통해서도 마땅한 수익을 내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특히 대기업들이 하청 주문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다가 결국에는 이익 증대를 위해 생산마저 자체적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대형마트 등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는 PB제품(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생산을 의뢰한 후 자사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제품) 생산방식도 중소기업을 대형유통업체의 하청공장으로 변질시킨다고 말했다.
◆ 정부 "먹을거리 중소기업들 어려움, 이해는 하지만…"
정부는 마땅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제매입세액 공제제도의 경우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문제와 세수(稅收) 감소 우려로 손을 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식품업계 요구대로 세액 공제율을 높일 경우 다른 면세품목 적용 업종들에 대해서도 공제율 혜택을 줘야 한다"며 "최근 세수가 줄어드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음식점들과 식품 가공업체들의 공제율 차이에 대해서는 "이해는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OEM 생산방식에 대해서는 업체들 간의 이견으로 별다른 대응 방안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관계자는 "대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부 업체들은 오히려 독자적인 경쟁력 향상보다는 하청 주문을 통한 생산을 선호하고 있다"며 "대기업들의 먹을거리 시장 침투를 막는데는 주력하고 있지만, 하청제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