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역이 '실태조사 우선실시구역'이라구요? 관심 없습니다. 뉴타운 한다는 말 자체가 신물이 납니다."
18일 서울 중구 신당1동(신당10구역) 236번지 인근. 전날 서울시가 뉴타운·재개발 등 정비예정구역 중에서 추진주체가 없고 주민(토지주) 간 갈등이 많아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꼽은 163구역 중 하나인 이 곳은 맞은 편 동대문 패션거리와 달리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의 단독주택과 저층 다세대·다가구 주택들은 곳곳이 부서져 있거나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고, 사람 1명도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골목 사이에는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사업 추진 여부가 불투명해 돈을 들여 집을 고치지 못한 탓이다.
이곳에서는 추진위들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해 뿌린 비방용 전단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추진위 관계자는 "실태조사 후 주민의견 수렴과정에서 투표가 있을 것"이라며 "한 명의 표라도 더 받기 위해 전단지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 올해 안에 28개 구역은 해제 여부 결정, 뉴타운 실마리 찾나?
지하철 2·6호선 인근의 신당10구역은 4만3000㎡ 규모로 재개발이 추진된 지 10년이 다 돼가는 곳이다. 그러나 아파트를 짓자는 추진위와 고밀도 복합 역세권 개발을 주장하는 추진위가 대립하며 사업은 표류 상태다. 조합도 동의서 조작 소송 등으로 해산된 상태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당10구역과 같이 정비구역으로 묶여 있지만, 주민 간 갈등으로 조합도 설립하지 못한 채 사업 추진을 못 하고 있는 곳은 서울에만 266곳이다. 서울시는 이 중 163개 구역을 1차 실태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그중에서도 28개 구역은 올해 안에 실태조사 및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구역 해제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정상적인 개발사업이 불가능한 곳은 정비구역을 해제해 자유롭게 재산권을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구역 해제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더라도 갈등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신당10구역의 경우 GS건설로 시공사까지 선정됐다가 조합이 해산된 경우여서 사업 추진에 이미 비용이 수년간 투입된데다가 사업추진에 의지를 가진 추진위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뉴타운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주민이 원한다면 구역을 해제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업 추진을 원하는 이들에 대한 대응책은 나온 바가 없다. 신당10구역을 비롯해 수백 개의 정비구역이 대부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신당10구역의 M중개업소 사장은 "어차피 몇년 동안 주민들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만큼 차라리 구역을 해제해 각자 알아서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며 "다만 아파트를 지으려고 비용을 들여 수년간 사업을 추진하던 추진위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핵심은 '부동산 경기 침체', 뉴타운 투자자 갈 곳 없다
실태조사 후 주민의견 수렴, 구역해제까지의 로드맵은 나온 상황이지만, 실제 적용은 아직 가시밭길이다.
먼저 뉴타운·재개발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과 투자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수년간 시간과 비용을 들여온데다가 정비구역이 해제되더라도 거래가 쉽지 않다. 현재 대부분의 뉴타운·재개발 지역의 중개업소에는 지분 매물이 잔뜩 쌓여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돈을 들여 수리해 살거나, 수익형부동산 용도로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매물이 쌓이다 보니 지분 값도 하락세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재개발 지분 가격은 2011년 1월 3.3㎡당 2562만원이었지만 6월 기준 현재 2434만원으로 5%쯤 떨어졌다. 특히 수색증산재정비촉진지구는 같은 기간 2685만원에서 현재 2125만원으로 3.3㎡당 500만원 이상 떨어졌고, 영등포재정비촉진지구도 같은 기간 3899만원에서 3149만원으로 3.3㎡당 750만원이 내렸다.
실태조사 우선구역으로 지정된 도봉구 창동 521-16의 K중개업소 사장은 "뉴타운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실태조사가 나오면 바로 구역이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수년 전에 지분 거래가 끊겨 매물만 쌓여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투자용으로 지분을 가진 사람들은 서울시가 뉴타운 정책을 폐기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고, 시장에선 지분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실태조사 후 주민의견 수렴이 진행되는 곳에서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