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17일 광주고법 전주 형사1부(재판장 김종근) 심리로 열린 전(前) 전북대병원 마취과 수련의 이모(29)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정에서, 이씨는 이같이 말하며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이씨는 작년 5월 19일 오전 2시쯤 전북대병원 4층 이비인후과 입원실에 들어가 환자 K(22)씨의 수액에 향정신성의약품을 넣은 뒤 K씨 침대에 올라가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이씨는 1심 재판에서도 "술이 너무 취해 필름이 끊긴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 24일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렀고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면서도 "의료인의 지위를 이용, 보호받아야 할 환자를 향정신성의약품까지 투약해 강제 추행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고 수법이 파렴치하다"며 이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음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었던 게 아니라 미약했던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현행 형법(제10조)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으면 벌하지 않고(제1항), 미약하면 형을 감경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씨의 변호인 측은 항소심 첫 재판에서도 "피고인이 술에 취해 입원실과 숙직실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현장 검증을 요청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마취과 당직실은 3층이었고 입구가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유리문이었다"며 "CCTV 영상에서도 이씨는 비틀거리지 않고 바로 걷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범행 직전 마취과 당직실에서 컵라면을 먹은 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고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면서 함께 탄 이비인후과 당직의사가 4층에서 내리는 것을 본 다음 3층에서 내려 계단을 이용, 4층으로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고법 재판부는 내달 7일 숙직실과 입원실, 계단 통로 등에서 현장 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