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성모(29) 대리는 9일 동유럽으로 13박 14일 일정의 배낭여행을 떠난다. 회사가 직원들의 경험 축적과 창의적 아이디어 발굴을 돕기 위해 2007년부터 도입한 '아이디어 휴가제'를 신청한 것이다. 같은 회사 주모(30) 대리도 이 제도를 이용해 이번 주 동남아시아로 휴가를 다녀올 계획이다.

제일기획 이정은 팀장은 "직원들이 오지 탐험, 단기 연수, 세대 연구 등 경험하고 싶은 주제를 정하면 최대 2개월까지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며 "직장인들이 재충전을 하려고 해도 시간 제약이 있는 기존 휴가 제도로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최근 휴가와 근무 시스템에서‘휴식과 재충전’을 중시하면서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 향상을 꾀하고 있다. 위 사진은 KT가 운영 중인‘스마트워킹센터’에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 아래 사진은 LG생활건강 본사 사무실의 빈 책상 위에 직원이 자기 근무시간을 알리는 메모지를 놓아둔 모습.

최근 기업들 사이에 '휴(休)테크' 바람이 불고 있다. 1주일이 대다수이던 여름휴가를 2주로 늘려 쉴 수 있도록 하는 장기 집중 휴가제를 권장하고 장기근속 사원에게는 특별 휴가를 제공하는 등 새롭고 다양한 휴가제가 도입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이 근무시간과 장소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탄력 근무제'를 실시해 평소에도 '휴테크'에 나서고 있다.

장기 휴가로 직원 교류·비용 절감 효과

최근 기업들 중에는 아예 2주 이상 휴가를 다녀오도록 기간을 못박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에쓰오일은 직원들의 재충전을 위해 1년에 한 번씩 2주 장기 휴가를 의무적으로 가도록 하는 '집중 휴가제'를 2010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새해에 휴가 계획서를 내면 연중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휴가를 다녀올 수 있다. 이 회사의 '집중 휴가제'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체 근무 시스템. 임원이나 팀장이 휴가를 떠나면 다른 부서 간부가 해당 부서에 와서 업무를 대신하면서 새 업무를 이해하고 직원과 교류해보는 '부수 효과'도 내고 있다.

신한은행도 2주짜리 장기 휴가를 가는 '웰 프로' 제도를 운용 중이다. 2010년 도입된 이 제도는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직원들이 충분히 휴가를 다녀옴에 따라 절감된 연월차수당(쓰지 않은 휴가에 대한 현금 보상) 100억여원으로 지난해 신입 사원과 계약직 주부 사원을 더 채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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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근속 사원 격려 차원에서 주어지는 특별 휴가제는 이제 대부분의 기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온라인 게임 업체 넥슨처럼 직원들이 20~30대 젊은 층으로 구성된 경우에는 3년차, 6년차, 9년차 직원에게 10~20일 휴가를 보내주는 '3·6·9 휴가제'를 운영하기도 한다.

"휴식은 재충전 시간… 근무시간보다 업무 효율성 높여야"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근로시간=생산성'이란 고정관념이 자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느냐'보다 '얼마나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일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긴 나라로 올라 있다. 2010년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근무시간은 219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전체 평균(1749시간)보다 20% 이상 많다. 반면 한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23위)를 차지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박사는 "장시간 근로는 산업화 시대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힘이었지만 이제는 양적 투입보다 생산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업무 집중도와 근무 만족도를 끌어올리려면 충분한 휴식을 통한 재충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소 근무시간에도 휴식·재충전 토대 마련

장기 휴가제 도입뿐 아니라 쉴 땐 쉬고, 짧은 시간에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평상시 근무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정보통신 기술 발달과 함께 근로자가 개인 사정에 따라 근무시간과 형태를 조절하는 유연 근무제 도입이 기업들 사이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

KT는 직원들이 집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경기도 고양시 일산센터와 평촌·부천·구미·분당·부산 등 15곳에서 '올레 스마트 워킹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매달 KT 직원 4000여명이 스마트워킹센터나 집에서 근무하고 있다.

KT 김철기 부장은 "임신했거나 만 10세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은 주 3일 재택근무를 장려하는 육아 케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라며 "1인당 출·퇴근 절감 시간 94분을 모두 더하면 연간 26년을 절약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은 2006년부터 매달 하루씩을 휴무일로 지정해 전체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다. 또 오전 7~9시, 오후 4~6시에 30분 간격으로 출·퇴근 시간을 총 5가지로 만들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에 대해 "휴가 제도를 단순히 직원들에게 휴식을 주는 단계에서 업무에 도움이 될 지식과 경험을 쌓을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라"고 조언한다. 고용노동부 박종길 근로개선정책관은 "최근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기업이 직원에게 휴가를 쓰도록 요구하는 휴가 사용 촉진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더욱 계획적이고 효율적인 휴가 활용을 위해 사내 규정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