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1일 오전 10시 SK그룹의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지원 관행 현장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SK C&C 건물 8층 회의실에 상주하던 공정위 조사관들에게 SK C&C 컴플라이언스본부장 K모 상무가 나타났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조사관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기 위해 들어왔다던 K모 상무는 갑자기 서류가 들어있는 상자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상자는 현장조사 지침에 따라 SK C&C 직원들로부터 서명 날인을 받아 조사관들이 봉인을 해놓은 상태였다. K모 상무는 이 상자를 곁에있는 P모 과장에게 건냈고, 그는 상자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상자에는 SK C&C 측이 작성한 'SK 계열사에 대한 매출 대비 매출이익 비율이 38%인데 비해 비계열사에 대한 거래에서는 이 비율이 13% 수준이다', 'SK그룹 다른 계열사에 적용되는 시스템 유지보수(MA) 요율을 SKT에 적용되는 요율 수준까지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분석자료가 담겨져 있었다. SK C&C가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과도한 부당내부거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정황을 입증해주는 자료들이다.

순십간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공정위 조사관들은 P과장을 쫓아갔으나 주위에 있는 SK C&C 직원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공정위는 SK C&C측에 강력 항의했다. 나중에 해외출장에서 복귀한 SK C&C 대표이사가 유감표명과 적극적인 조사협조를 약속했지만 탈취한 자료를 반납하라는 공정위의 요청은 묵살됐다. 이미 자료가 폐기된 상태이기 때문에 복구할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만 되돌아왔다. 이에 대해 SK C&C측은 지금도 “급박하게 진행되던 현장에서 벌어진 개인의 우발적 행위”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 결과, K모 상무 등은 이날 사건이 일어나기 한시간 전인 오전 9시쯤 조사방해를 모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K모 상무가 P과장에게 자료를 건네주면 들고 달려간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K모 상무는 직원들에게 '공정위 조사관들과의 물리적 접촉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제하라’는 문구는 뒤따라 나오는 조사관들을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제지하라는 의미로 공정위는 보고 있다.  변호사인 K모 상무는 현장조사 내내 공정위 조사관들에게 “자료를 특정하지 않고 무작위로 수집하는 등 조사 절차가 적법적이지 않다”는 항의를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또 “SK C&C측이 임직원들에게 업무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자료가 들어가 있는 외부저장장치를 자택에 보관하게 하는 등 허위진술과 조직적 조사방해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같은 혐의로 공정위는 SK C&C와 임직원들에게 2억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SK C&C 법인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금액인 2억원을 부과했다. 조사방해를 주도한 K모 상무는 5000만원, 지시를 받고 자료를 들고 도주한 P모 과장에게 2000만원, K모 상무의 업무를 지휘한 상급자 C전무는 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한편 SK그룹의 계열사인 SK커뮤니케이션즈(이하 SK컴즈)도 지난 2008년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인터넷 포털 분야 불공정행위 조사를 나왔던 공정위 조사관들을 방해하기 위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수거해 별도 보관한 혐의다. 임원회의에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직원 60여명 하드디스크의 수거를 모의한 정황이 포착됐다. 공정위는 당시 이 회사에 1억2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담당 임원을 고발조치했다.